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입법전쟁 종군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여성 의원 네 명이 뒤엉켰다. 2대 2의 싸움이었다. 끌어내려는 힘과 버티려는 힘의 균형이 어느 순간 깨졌다. 한 의원이 상대 당 의원의 목덜미를 잡아챘을 때였다. 오십 줄의 두 의원이 40대 안팎의 둘을 압도했다.

“미국에서 이러면 다 잡혀가요.” 미국 명문대 출신의 보좌관이 말했다. 국회 본관의 충돌 상에 놀란 듯했다. 두 시간여 지났을까. 돌격조 속에 있는 그가 보였다. 땀으로 범벅 된 그는 묘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철통 보안의 상징이었던 30㎝만 열린다는 창문이 무참히 뜯겨졌다. 그 사이로 언론노조 소속원들이 대거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오히려 “창문을 넘어온 게 부끄럽지 않다”고 외쳤다.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을 때였다. “굶어” “굶어”란 구호만이 본회의장으로 파고들었다. 적의가 가득했다.

전쟁이었다. 적개심이 폭력을 부르고, 폭력은 더한 폭력을 불렀다. 한계는 없었다. 전염성도 강했다. 의원과 의원이 싸웠고 보좌진과 보좌진이 맞섰다. 그 격렬함에 무술 고단자라는 경위들도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졌다.

진실로 전쟁이었다. 누구나 절대 전쟁만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러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전쟁이 때론 고도의 정치 행위인 탓이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무적의 전투력을 보여 왔다. 이번 육박전에서도 승리한다면 현 정부에 대한 결정타가 될 터였다. 한나라당으로서도 응전 외엔 불가했다. ‘초식성’이란 꼬리표는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양측 모두 “내가 적을 타도하지 못하는 한 적이 나를 타도할지 모른다”(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제 포연이 사라지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처참한 잔해가 드러나고 있다. “참담하다”란 표현으론 턱없이 부족한 심경일 게다.

하지만 위로하자. 전쟁이야말로 반전(反戰)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은 비로소 169석의 위력을 절감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 때부터 갈고 닦아온 전투력도 ‘규모’ 앞에선 무력해질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다수 의석이 돼야 할 필요성 또한 느꼈을 거다. 한나라당은 성취감과 낭패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8개월여의 조롱 속에 짜내고 또 짜낸 힘으로도 간신히 이겼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여야 모두 신중하게 할 거다. 일종의 전쟁 억지력인 셈이다.

또 기억하자. 한두 달, 혹은 1∼2년 뒤에 이번 사안이 진정 이렇게 싸울 일이었는가 되묻는 것을. 지금껏 많은 법안이 충돌 끝에 통과됐다. 세상이, 하늘이 곧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90년대 말 유통시장개방법이, 현 정부에선 미국산 쇠고기 파문 와중에 가축법이 그랬다. 하지만 세상이, 하늘이 무너졌는가.

고정애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