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제주은행 조치 파장]금감위 잣대 형평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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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은행구조조정에 대한 금융감독위원회의 원칙이 수시로 바뀌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7개 조건부승인은행 중 하나인 외환은행에 대해선 외자유치와 합병을 꼭 해야 한다고 했으면서도 슬그머니 한국은행 증자로 후퇴해버렸다.

또 부실은행의 감자에 대해서도 때에 따라 완전감자와 최저자본금규정 사이에서 오락가락해 스스로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외환은행 증자지원 = 금감위는 당초 합병으로 몰고가려 했으나 코메르츠은행이 강하게 반발하자 한은의 증자지원 및 코메르츠은행측의 추가출자로 해결키로 했다.

문제는 현행법상 한은이 외환은행에 추가출자를 할 수 없게 돼있다는 것. 한은법은 한은이 영리단체에 출자를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환은행은 지난 67년 특수은행으로 설립됐기 때문에 한은의 출자가 이뤄졌지만 88년 시중은행으로 전환되면서 '영리단체' 로 탈바꿈했다.

한은은 당시 외환은행 주식을 모두 매각하려 했으나 정부는 증시사정을 감안해 영리단체 출자를 금하는 한은법 규정의 적용을 유예해 그대로 갖고 있게끔 했다.

하지만 한은은 법률상 외환은행 주식을 보유할 수는 있지만 추가출자는 할 수 없게 된 상태. 이 때문에 금융계에서는 정부가 한은 출자를 강행할 경우 특혜시비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정해진 방침이므로 따르긴 해야겠지만 먼저 법을 고치거나 예외조항을 두는 등의 특별조치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 제주은행 감자 = 금감위가 부실은행에 지시한 감자규모가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제주은행의 경우 상법상 주식회사 최저자본금인 5천만원까지 감자해야 한다.

반면 평화은행과 강원.충청은행 등은 각각 1천억원, 2백50억원의 자본금을 남길 수 있다.

당초 금감위는 지난 6월말 경영개선명령을 받았던 이들 3개 은행에 대해 관련법 개정을 전제로 완전 감자 명령을 내렸었다.

그러나 국회 공전으로 개정 특별법 통과가 지연되자 결국 금감위는 지난달 22일 현행 은행법에 따라 최소 자본금 수준의 감자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경영개선 명령을 수정했다.

반면 이번 제주은행의 경우는 개정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이므로 완전 감자를 지시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금감위의 설명이다.

문제는 국회 공전으로 덕 (?) 을 본 3개 은행에 대해 금감위가 추가 감자명령을 내릴 것인가다.

이에 대해 금감위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소지가 있다" 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완전감자 명령으로 제주은행 주식 1천만주는 완전히 휴지조각이 된다.

제주은행 최대주주인 천마를 비롯, 소수주주 6천여명은 현 주가로 따질 때 약 53억원의 손실을 입게 됐다. 물론 액면가로 따지면 손실은 훨씬 더 크다.

증권거래소는 11일 감자명령을 받은 제주은행의 거래를 증자완료 때까지 정지시켰다.

기존주주들에겐 주식을 현금화할 수 있는 길이 봉쇄된 셈이다.

반면 법규정 미비를 이유로 최소자본금까지만 감자키로 한 강원.충북.평화은행은 지난달 22일부터 주식거래가 재개돼 이들 은행 주주들은 완전감자 때와 비교해 약 절반 정도 손실을 줄였다.

충북은행 주주들은 최근 주가가 1.5배 가량 올라 오히려 이득을 봤다.

이 때문에 제주은행 주주들은 "감독당국의 잣대 없는 조치로 우리만 손해를 보게 됐다" 며 반발하고 있다.

이정재.남윤호.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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