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랭지 배추농사 농민·중매인·소비자 모두 피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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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국내 최대의 고랭지 배추 산지인 강원도강릉시왕산면대기4리 속칭 암반덕이에서 17년째 배추농사를 짓고 있는 鄭모 (46) 씨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올해 돈 많이 벌었겠어" 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씁쓸한 생각을 지워버릴 수없다.

소비자들로서는 지난 7월말~8월중순까지 전국적으로 내린 '럭비공' 폭우로 '금배추' 를 사다먹다보니 당연히 생산자가 큰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겠거니 하고 일일이 항변을 하지 않지만 올 작황과 유통구조를 모르고 무심코 내뱉는 이들이 야속한 생각마저 든다.

올해 고랭지 배추농사는 재배농민은 물론, 밭떼기한 중매인과 소비자등 어느 누구도 재미를 보지 못한 피해자 (?) 일뿐이라는 것이 鄭씨의 주장이다.

鄭씨에 따르면 강릉시왕산면과 평창군대기리등 대관령인근 고랭지 채소 재배농민 대부분은 파종후 75~80일이면 수확하는 배추를 45~50일 키운 상태에서 밭떼기로 산지수집상에게 넘긴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강원도 영동해안및 산간지역에 7월초~8월중순까지 거의 매일 내리다시피 한 호우와 일조량부족으로 작황이 예년의 30~40%에 불과한 흉작이었다.

鄭씨는 그나마 지난6~7월초 강원도태백시등 준고랭지에서 생산된 봄갈이배추가 생산과잉으로 5t트럭 한대분 산지가격이 10만원이하로 뚝 떨어지자 불안한 마음에 지난7월초 생산비를 겨우 웃도는 평당 4천원에 밭떼기로 모두 처분해 지난해 수준으로 그럭저럭 수지타산을 맞췄으나 일부농민의 경우 1천원에 팔아 생산비도 못건졌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밭떼기 한 배추를 출하하기 위해 산지를 찾은 한 중매인은 "재미를 못보기는 중매인들도 마찬가지" 라고 항변했다.

3백평당 5t트럭 1대분량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가격을 책정했으나 실제 생산해보니 8백~9백평에서 겨우 1대를 채울 수있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출하초기인 7월말~8월초에는 손해보는 장사를 하다 이달초 가락동시장등 대도시 시장에서 경매가격이 7백만~7백50만원까지 치솟으면서 겨우 적자를 모면했다는 주장이다.

결국 포기당 3천~5천원의 '금배추' 를 사먹어야 하는 소비자 뿐만 아니라 재배농민과 중매인 모두 게릴라성 여름폭우의 피해자라는 하소연이다.

강릉 = 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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