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일 ‘총대’ 이윤성 부의장, 봉쇄 뚫고 대신 의사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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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성 국회부의장(오른쪽에서 둘째)이 22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는 이날 코와 손목에 부상을 입었다. [뉴시스]

22일 결국 한나라당 소속인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가결 방망이를 두드렸다. 여야의 물리적 대치가 극심할 경우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더라도 본회의의 사회를 못 보는 일이 많았다. 그럴 경우 대개 여당 소속 부의장이 대신 방망이를 잡았다. 이 부의장도 그랬다.

그도 예상하고 있었다. 평소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해온 터다. 하지만 이날 ‘궂은 일’을 하기까지 그는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했다. 오전 중엔 서울시내 모처에서 대기해야 했다. 김형오 의장이 사회를 못 볼 때에 대비, 몸을 숨긴 것이라고 한다. 그는 본회의 시간에 맞춰 오후 2시 본관 로텐더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모든 출입구는 민주당 의원들과 보좌진들에 의해 봉쇄된 상태였다. 그는 그 사이를 뚫고 들어가려다 실패했다. 콧등에 상처를 입고 손목 관절을 다쳤다. 그로부터 1시간20여 분 뒤 한나라당 보좌진이 출입구 하나를 확보한 뒤에서야 그는 본회의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이 부의장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오후 3시32분 개의 선언을 했고 의결정족수가 됐는지부터 챙겼다. 곧이어 “오늘 장내가 소란하니 정상적으로 회의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곧바로 표결 선포를 했고 신문법·방송법·IPTV법·금융지주회사법을 차례로 가결 선포했다. 그는 도중 민주당 의원들이 욕설을 퍼붓자 “이윤성 잘한다, 이런 소리는 없느냐”고 되받기도 했다.

이 부의장은 산회를 선포한 이후엔 입을 다물었다. 보좌진은 “죄송하다. 오늘은…”이라고만 했다.

한편 김형오 의장은 오후 3시30분쯤 사회권을 이 부의장에게 넘겼다. 이에 앞선 오전 10시50분쯤 김 의장은 오전 김양수 의장 비서실장을 통해 “오늘 국회법 절차에 따라 본회의에 표결을 부치려 한다. 미디어법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 외롭고 불가피하게 내리게 된 결단에 대해 의장으로서 책임을 지겠다. 국민의 질책을 달게 받겠다”며 “다만 이런 문제 하나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의장이 나서서 의장 고유권한으로 종결시킬 수밖에 없도록 만든 상황이 참담하다”는 토로도 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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