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시 짓고 아내는 묵화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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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 백사장 언덕배기 모래 턱/경사는 45도 태양고도 90도/버팀목 하나 없는 외로운 모래밭길/밀어 올리는 쇠똥 경단/밀려 내리는 모래알….’

송국씨가 곤충 시화전에서 선보일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24일 개막하는 ‘2009 울진 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의 곤충관에 내걸린 ‘쇠똥구리’란 제목의 시다. 시는 곤충관의 곤충연구실장을 맡은 송국(51)씨가 썼다. 시만 있는 게 아니다. 전통 문창살 액자에 시를 쓰고 아래엔 송씨가 채집한 쇠똥구리 표본, 오른쪽에는 화가인 그의 아내가 묵화를 그렸다. 처음 선보이는 곤충 시화다. 곤충 시화를 선보인 송씨는 그동안 곤충을 소재로 한 시만 60여 편을 지었다. 필명은 ‘벌레시인’이다. 아직 문단에 등단하지는 않았다.

그는 본래 대학에서 생물을 공부하고 인천의 송도중고교에서 생물을 가르쳤다. 송씨는 곤충 분류에 관심이 많아 대학을 졸업하면서 곤충 채집을 시작했다. 개인 곤충박물관을 세우는 게 꿈이었다. 그는 15년 교편 생활 동안 전국 각지에 다녔고, 그 뒤 뉴질랜드에 잠깐 살 때도 곤충 채집을 계속했다. 그동안 채집한 곤충만 국내외에 걸쳐 2000여 종 1만5000여 점에 이른다.

그는 채집과 표본을 만들면서 세밀하게 알게 된 곤충의 생태를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곤충 종마다 그들만의 독특한 생태를 인간 세계와 연관 지어 시를 썼다. 산속에서 몇 발짝 길을 안내하고 날아가 버리는 길앞잡이라는 곤충은 삶을 인도한 어머니에 비유했고, 은빛 모시나비는 할머니와 연결지었다.

송씨는 시 창작을 배운 적이 없어 동료 국어 교사에게 습작을 보여 주었다. 동료 교사가 한 두마디 충고를 해주면 다시 시를 다듬었다.

“아직도 시의 문학성은 미완입니다. 서화라는 형식을 통해 곤충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자는 게 본래 목적입니다. 농업은 인간·작물·곤충 3자가 유기적으로 조화돼야 성공하거든요.”

그는 곤충과 인간이 3000년 전부터 서로 작물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가 이제 인간이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곤충을 아예 말살하려고 농약까지 동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곤충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얻고 있다. 곤충 중 벌과 나비류는 식물의 수정을 돕는다. 종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곤충과의 공존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울진=송의호 기자 ,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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