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IMF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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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통증 (痛症) 은 일반적으로 연령이나 심리적 상태, 또는 그 사람의 사회적.문화적 배경에 따라 정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똑같은 두통을 앓고 있더라도 그 사람이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 또는 어떤 종교에 어느 정도 심취해 있느냐에 따라 더 많이 아프기도, 덜 아프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제니스 모스와 로버트 모스 두 심리학자가 캐나다 서부에 거주하는 앵글로 색슨.이스트 인디언.우크라이나.허터리트 등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네 그룹을 대상으로 연구조사를 벌인 일이 있었다.

그 결과 이들은 네 그룹이 똑같은 통증에 대해 각기 다르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통증의정도는 문화적 학습에 따른 것' 이라는 말도 이때 부터 나왔다.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모르는 게 약' 쯤 될까. 어떤 분야에 대해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의학에서의 '플라시보 효과' 는 바로 '모르는 게 약' 에 해당하는 특수요법이다.

아픈 사람에게 특효약이라며 밀가루 같은 것을 먹게 하면 낫는 경우가 많다는 이른바 위약 (僞藥) 의 효과다.

얼마전프랑스에서 한 여인이 살충제를 마시고 사망한 일이 있었다.

부검해 보니 독성이 전혀 없는 약이었는데 여인은 죽음을 생각하며 마셨고, 생각대로 죽은 것이다.

실험해볼 일은 못되지만 진짜 살충제도 독이 없다 생각하고 마시면 과연 생명에 지장이 없을까. 어쨌거나 병이나 고통은 마음에서부터 생겨나는 경우가 많고, 그럴수록 마음으로 치유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플라시보 효과' 는 훌륭하게 보여준다.

극심한 불안감.초조감이 크고 작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차례 입증된 바 있다.

화를 내거나 고민을 많이 하면 위 (胃) 내벽의 위산에 대한 보호장치가 약화돼 궤양이 생기며, 그밖에도 혈압이 올라가거나 부정맥 또는 불면증 등의 증상이 생기기 쉽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사태는 우리 사회에 그와 같은 'IMF병' 을 만연시켰다.

지난 10개월간 두통약.위장약 등의 판매가 급격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국민을 속이거나 기만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되지만 국민의 마음을 보듬고 진정시키는 정치권의 '플라시보 효과' 를 기대할 수는 없는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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