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금강산 관광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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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 가을엔 우리 다 같이 금강산 구경 갑시다. " 정주영 (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은 과연 거인답다.

지난 봄 성물 (聖物) 이라 불러 마땅할 소떼를 이끌고 귀향하던 장관도 늠름했고, 돌아와서 불쑥 내뱉은 '금강산 구경' 엔 노인의 선풍 (禪風) 마저 풍겼다.

사진기자들이 이따금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올라 희끄무레한 금강산 능선 한 자락을 찍어 분단의 비극을 알려온 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25일부터는 누구나 그 곳에 갈 수 있다니 정주영식 쾌도난마 혹은 무심타법이 신통하기까지 하다.

소떼가 넘어가던 날 소 볼을 어루만지며 "내가 차라리 소라면" 하고 눈물짓던 어느 실향노인도 비록 고향엔 가진 못하나 아무쪼록 금강산 땅이나마 밟게 되기를 빌어본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볼 수는 없겠지만/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내 아버지 …18번이기 때문에/고향생각 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라구요. "

분단의 상처에 관한한 어떤 노래보다도 더 절창인 젊은 가수 강산에의 이 노래 '라구요' 의 2절은 두만강이 '바람 찬 흥남부두' 로 바뀌고 소주를 찾는 아버지 대신 눈물로 밤을 새우는 어머니의 한으로 이어진다.

80년대 수재 때 북한에서 보내온 쌀을 고향의 옛 물건인 양 고이 간직하던 실향민들에게 '눈물 젖은 두만강' 이나 '굳세어라 금순아' 는 가장 절절한 망향가로 불려질 수밖에 없을 터이고, 이런 맥락으로 금강산은 그들에게 오히려 고향의 차원을 뛰어넘는 성지로 여겨지고 있을 것 같다.

실향민들에게는 금강산 관광이 성지순례나 다름없는 의식이 되는 것이다.

또 실향민이 아니더라도 한국인에게 금강산이 갖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이 여행은 우리들 마음속에 쌓여 있는 분단의 벽 한 모서리를 허무는 역사적 각성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도 이것을 관광사업 성격보다는 민간의 통일사업이라는 성격에 더 배려를 해야 할 것이고, 이같은 배려는 북한측에도 똑같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대로라면 이같은 배려보다는 북한은 '외화벌이' 에 더 신경을 쓰는 것같고, 현대측은 호화판 유람에 더 비중을 두지 않느냐는 우려가 든다.

북한측 아태평화위가 입출국 수수료.금강산 입장료.관광안내비 등의 명목으로 요구한 3백달러 (약40만원) 는 이번 관광을 주도하는 현대측 금강개발의 '제주도 3일 여행 상품' 비용 (왕복항공.호텔2박.조중식.보험.관광입장료 포함) 과 맞먹는다.북한측의 요구가 지나친 것이다.

남한 인사들이 평양의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을 방문하면 그 곳 어린이들이 "선생님 노래 불러요" 하며 방문객의 손을 부여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을 목놓아 부를 만큼 통일의 열망에 불타는 모습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강매 (强賣) 의 인상이 짙다.

현대측은 이 요구액에 용선료.숙식료 등을 보태 1인당 평균 1백30만원선에 관광요금을 책정했다고 한다.

실향 노부모를 모시고 일가족 4명이 나섰을 때 기본요금만 모두 5백20만원이 든다는 계산이다.

같은 금강개발이 개발한 호주 6일간 여행 비용이 1인당 1백9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일반인들은 심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받아들이기 힘든 부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관광객 모집 기준에서 실향민과 경로자에게 우선권을 주고, 같은 현대 산하인 현대할부금융회사가 '금강산 효도관광 대출' 을 서비스한다는 광고가 공허하게 들리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측은 과학적 타산으로 요금을 책정했을 테고, 또 금강산사업을 시작으로 동해안 벨트를 잇는 국가적 관광사업 구상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같은 원대한 계획은 계획대로 추진하되 지금 역점을 둬야 할 것은 실향민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금강산을 가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실향1세대는 이제 70줄에 들어선 한많은 노인들이다.

그들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다.

그들 중 많은 분들이 비용 때문에 북녘땅을 밟아볼 기회를 포기하고 타계하면 이중삼중 그 한을 어찌할 것인가.

이헌익(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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