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1국' 분노로 토해낸 반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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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도전기 1국
[제7보 (112~130)]
黑.李昌鎬 9단 白.李世乭 9단

반격은 바둑의 백미다. 반격은 공격해온 상대가 약점을 노출하고 오래 때를 기다리던 이쪽이 그 약점을 포착했을 때 제대로 이뤄진다. 더구나 상대가 이창호9단 같은 실오라기의 허점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일 때 반격은 더욱 뭉클한 맛을 준다.

중앙에서 백△ 두점이 흑▲의 조용한 공격에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관전하는 프로들도 모두 백△들을 죽은 돌로 여기고 '흑 2집반 우세'를 점치고 있다. 절박하고 괴로운 상황에서 이세돌9단은 잠시 손을 돌려 우상 112로 향한다. 재능이 번득이는 끝내기의 맥점이어서 이창호9단은 부득이 끌려다녀야만 했다.

흑은 조금 당했다. 아마도 한집이었을까. 대세와는 무관했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에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던 이창호의 마음에 이 반집인지 한집인지가 가시에 찔린 것 같은 상처를 남겼다. 다시 두 사람이 우중앙의 전장에서 마주섰을 때 이 상처가 사건을 만들어냈다.

125의 이단젖힘. 오래 참던 이창호가 분노를 토해내듯 강수를 두어왔다. '참고도'처럼 흑1로 곱게 뻗어 한번만 더 참았으면 흑의 우세는 순탄하게 이어졌을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125는 별 강수도 아니다.

이런 장면에서 누구나 둘 수 있는 수다. 하나 표범처럼 엎드린 채 기회만 노리던 이세돌의 눈에 흑의 허점이 크게 들어왔다.

그는 126, 128로 심호흡한 뒤 130으로 쭉 뻗었다. 순간 죽음을 기다리던 백돌들이 흑의 배후에서 기세등등 일어섰다. 이창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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