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해외 칼럼

저농축우라늄 은행 창설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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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0년간 지지부진했던 핵 감축의 시동을 걸었다. ‘핵 없는 세계’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핵 보유국의 핵무기 감축이 핵 확산 금지와 깊이 연관돼 있음을 인정했다. 오바마는 1970년 제정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다시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NPT를 중심으로 한 핵 확산 금지 체제는 현재 혼란 속에 빠져 있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등 5개 핵 보유국이 NPT에 규정된 핵 감축 의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5개국은 핵이 안보의 핵심이라며 핵무기를 현대화했다. 이들도 핵무기가 힘과 영향력의 원천이며, 공격을 받을 때 반격할 수 있는 보험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로 인해 핵무기가 없는 국가들을 설득하기 어려워졌다.

둘째, 북한의 사례에서 보듯 NPT 가입국이 특별한 사태를 빌미로 NPT에서 탈퇴하는 걸 막을 수 없다. 셋째, 핵 확산 금지 체제를 감시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대한 지원 부족이 심각하다. IAEA 사찰요원들은 어떤 나라가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알 수 없다. 세계 정보기관이 운영하는 정찰위성의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사찰이 필요한 모든 지역에 접근할 법적 권한이 거의 없고, 실험장비들은 낡았다.

넷째, 주요 핵 기술의 확산을 방지하는 수출 통제 정책은 실패했다.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인 A Q 칸의 경우 국제적인 비밀 네트워크를 통해 북한 등에 핵 기술을 이전했다. 핵무기 보유국이 9개로 늘어난 걸 보면 비핵국, 특히 분쟁지역 국가들이 미래에 핵 보유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을 하는 많은 나라는 안보 환경 변화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수개월 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우라늄 농축이든 플루토늄 재처리든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주축으로 한 국제사회는 핵 확산 등 국제 안보 위협에 지금껏 무력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이들 문제는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빨리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을 발효시키고, 무기용 방사능 물질 생산을 중단하는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또 관련 시설의 보안을 개선해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달 나는 IAEA 이사회에 원자력 발전용 핵 연료의 공급을 보장하는 저농축우라늄(LEU) 은행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IAEA가 상당량의 LEU를 확보하고 있다가 원자력 발전국들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LEU의 안정적 공급은 미래의 원자력 발전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핵무기 전용 위험을 막아 핵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 LEU 은행은 정치적 고려나 차별 없이 필요한 나라에 핵 연료를 줄 수 있다. LEU 은행 설립을 위한 초기 자금은 비정부기구인 핵위협구상(NTI)이나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등의 지원으로 마련됐다. 그러나 이는 첫걸음에 불과하다.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활동은 모두 국제사회의 통제 하에 두는 협정이 뒤따라야 한다. 핵 확산 위험을 고려하면 때를 놓쳐선 안 된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정리=정재홍 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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