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참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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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97년 한국의 여름은 만화.애니메이션을 위한 것이었다.

국제규모의 행사 다섯개가 줄줄이 이어지며 관심있는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그러나 그 불씨는 곧 사그라들었다.

올해는 동아.LG 페스티벌 (5월).춘천만화축제 (10월)가, 그나마 축소된 규모로 겨우 그 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여름날 이웃 중국과 일본에서 열린 국제페스티벌. 12억5천여만명이라는 노동집약적 잠재력과 첨단기술력을 자랑하는 두 나라가 각각 내세운 이번 페스티벌은 세계3위의 영상만화대국을 자처하는 우리로서는 결코 간과할 것이 아니었다.

8월14일부터 19일까지 북경전람관 (전시및 행사) 과 중국영상자료원 (영화제)에서 열린 제1회 '베이징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은 애니메이션을 21세기 국가기간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중국정부의 의지표명과 다름없었다.

총 54개의 부스가 마련된 행사장 초입에는 CCTV와 베이징TV의 화려한 대형부스가 관객들의 눈길을 모았고 '우주소년 아톰' 의 대형 인형을 앞세운 데츠카 프로덕션 역시 관심의 대상이었다.

한국부스는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이름으로 입구부근에 3평규모로 마련됐는데 대원동화.B29엔터프라이즈.서울무비.오돌또기.필름앤웍스.한호흥업등 국내 유수업체들이 참가해 관심을 모았다.

TV방송국만 2천개라는 중국시장을 선점해야한다는 것은 전세계 모든 애니메이션 업체관계자들의 소망이겠지만 성급함은 절대 금물로 여겨졌다.

TV방영권을 돈대신 광고시간대로 지불하고 그것도 방송국내 에이전시를 통해 광고를 수주해야하는등의 까다로운 조건은 꾸준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부분. 상업애니메이션의 천국이라는 일본에서도 8월20일부터 24일까지 제7회 히로시마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열렸다.

원폭투하를 잊지말자며 '사랑과 평화' 라는 주제로 85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일본 원로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노력으로 세계 4대 페스티벌로 자리를 굳혔다.

베이징대회와 달리 영화제 위주로 구성된 이 행사에서는 전세계 55개국 애니메이션의 첨단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랑프리 '할머니와 비둘기' (캐나다) 를 비롯, '인어' (러시아) '버스비' (독일) '제리의 게임' (미국) 같은 수상작들에서는 컴퓨터를 비롯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작가들의 자존심이 엿보였다.

한국에선 34개 작품이 경쟁부문에 출품됐지만 본선진출 64작품 속에는 하나도 포함되지 못했다.

그나마 노르웨이에 유학중인 오경희씨의 '나비를 위한 안무' '송버드' 와 이성강씨의 '우산' 등 3편이 기획전에 선보인 정도. 경쟁부문이 진행된 아스터플라자 대강당 1천2백석은 새 경향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탐색하려는 사람들로 매번 가득 메워졌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영화제와 어린이들이 만든 애니메이션들에 비중을 둔 주최측의 배려가 돋보였다.

애니메이션이라면 자극적인 일본만화영화가 전부인줄 아는 문화편식증에 걸린 우리 어린이들. 이들에겐 당연히 세계 각국의 작품들 볼 권리가 있다.

어른들은 이제 무얼해야 할 건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베이징.히로시마 =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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