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세발의(?) 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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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사이버 테러 이후 한국은 미국·일본 등과 비교해 정보기술 보안에 투자하는 예산이 ‘세발의 피’ 수준이란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여기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표현이 있다.

극히 적은 분량임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세발의 피’라는 관용어를 많이 쓰지만 이런 말은 없다. 올이 가느다란 모시를 ‘세(細)모시’라고 하듯 가느다란 발을 연상해 ‘세발의 피’로 표기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새 발의 피’라고 해야 바르다.

말 그대로 ‘새의 발에서 나오는, 적은 양의 피’라는 뜻으로 사자성어로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고 한다. 이외에 분량이 매우 적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관용구로 ‘모기 다리의 피만 하다’ ‘새알꼽재기만 하다’는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새와 관련해 주의를 기울여야 할 표현으로 ‘새털같이 많다’란 말도 자주 꼽힌다. 셀 수 없이 수효가 많음을 일컬을 때 흔히 ‘새털 같다’고 얘기하지만 ‘쇠털 같다’고 해야 맞다.

새털과 쇠털의 양은 견줄 바가 못 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날은 ‘새털 같은 날’이 아니라 ‘쇠털 같은 날’이다. 이미 관용구로 굳어졌으므로 발음하기 쉽다는 이유로 임의로 바꿔 써서는 안 된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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