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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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호 33면

최고의 업적을 남긴 경제학자에게 수여되는 노벨 경제학상. 그런데 이거 엄격히 말하면 진짜 노벨상이 아니다. 노벨상의 설립 취지가 담긴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1895)엔 경제학 부문이 없다. 스웨덴의 중앙은행인 스웨덴은행이 1968년 창립 300주년 기념사업으로 만든 거다. 노벨의 유지(遺志)와는 관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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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이름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은행의 경제과학상’. 이를 줄여 노벨 경제학상이라 한 것이다. 보기에 따라선 저작권 침해 비슷하다. 그래도 오랫동안 노벨상에 묻어가다 보니 어느새 노벨 경제학상으로 권위를 굳혔다.

정식 노벨상이 아니므로 노벨재단이 상금을 주진 않는다. 대신 상을 창설한 스웨덴은행이 준다. 수상자 선정은 물리학상·화학상과 함께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에서 한다.

노벨상에 경제학 부문을 둘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선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노벨 가문의 후손인 페테르 노벨은 이 상을 없애자고 주장한다. 알프레드 노벨의 형 루트비히의 증손인 그는 몇 년 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제학상의 3분의 2는 미국 경제학자들에게 돌아갔다. 특히 증권이나 옵션에 투기를 하는 시카고학파에 주어졌다. 이는 인류 복지를 증진시키겠다는 알프레드 노벨의 뜻과 아무 관계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경제학이 인류 복지에 기여한 게 도대체 뭐냐’ ‘자격도 없으면서 왜 노벨상이란 이름으로 상을 받아가느냐’ 하는 말이다. 미국의 주류 경제학에 대한 호된 비판이기도 하다. 전 세계가 미국발 금융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을 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는 또 알프레드 노벨이 거부를 쌓긴 했지만 연구에 평생을 바쳤지, 비즈니스나 경제를 좋아하진 않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경제학으로 노벨을 기념할 필요는 없으니 상을 굳이 주려면 ‘스웨덴은행 경제학상’으로 주라고 요구한다. 노벨 문학상을 심사하는 스웨덴 아카데미도 1997년 스웨덴은행에 이 상의 폐지를 요청한 바 있다.

경제학자 사이에서도 폐지론자들이 적잖다. 이들은 ‘경제과학’이라는 개념에 거부감을 보인다. 스웨덴은행은 상을 만들 때 ‘경제학=과학’을 전제로 했다. 경제학도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엄정한 과학이므로 노벨상의 한 분야가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오만한 발상이지만 점잖은 진짜 과학자들이 잠자코 있던 덕에 슬그머니 넘어갔다. 영국의 경제학자 헤이즐 헨더슨은 이를 가리켜 “경제학의 정치성을 숨기기 위한 의도”라고 비판한다. 수학을 어지럽게 사용함으로써 경제학이 마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인 양 포장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정치적 의도를 품고 있으면서.

요즘 경제를 과학이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뉴욕증시는 폴 크루그먼이나 누리엘 루비니 같은 경제학자의 말 한마디에 출렁거린다. 워낙 불안하니 그들의 말을 예언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물리학자의 말에 따라 물리현상이 이리저리 바뀌는 거 봤나. 경제학이 과학으로 대접받을 날,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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