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설10년 헌법재판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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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헌법재판소가 1일로 창설 10주년을 맞는다.

87년 헌법이 개정되면서 여야합의로 창설된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헌법을 국민생활 속에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으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헌재 창설 이후 접수된 사건은 총 4천1백33건. 이중 3천7백17건이 처리됐다.

창설 초기엔 연평균 약 3백건 정도가 접수됐으나 95년 이후엔 연 5백여건이 접수돼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헌재는 지난해 7월엔 동성동본 혼인을 금지하는 민법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그동안 사실혼 관계에 있던 동성동본 부부 20만쌍에게 법적으로 부부의 지위를 부여했다.

또 96년 10월엔 영화의 사전검열을 규정한 영화법 규정을 위헌으로 결정, 그동안 영화인들의 창작활동을 가로막아왔던 영화검열제도가 폐지되기도 했다.

헌재는 그러나 정치권력과 관련된 민감한 사건에 대해선 딱 부러지는 결정을 회피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정치적 사건에 대해선 시간을 끌다가 위헌.합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심판청구 자격이 없다" 는 등의 이유로 각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헌재는 92년 6월 노태우 (盧泰愚) 당시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된 '지방자치단체장선거 불공고 위헌확인' 사건에 대해 2년2개월을 끌다가 94년 8월 "법률이 개정돼 소송할 필요가 없다" 는 이유로 각하했다.

이밖에 도시계획법의 그린벨트 관련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사건은 접수된지 9년을 넘기는 등 사건처리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헌재 결정이 내려졌는데도 법원이 이 취지에 어긋나는 판결을 하고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졌는데도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하는 등 다른 국가기관들에서 헌재 결정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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