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집값 오름세에 대해 또다시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 9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의 기자간담회에 이어서다. 이 총재는 17일 오전 산업·국민·우리 등 7개 은행의 행장들과 만나 “경기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값과 전세 가격이 오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시중의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 집값이 오를 뿐 아니라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자금을 얻어 쓰는 데도 제약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시중은행장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 총재, 데이비드 에드워즈 SC제일은행장, 강정원 KB국민은행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민유성 산업은행장, 김태영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이종휘 우리은행장, 김동수 수출입은행장. [연합뉴스]
부동산 전문가들은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상승 원인을 저금리와 풍부한 시중자금,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에서 찾는다(건국대 부동산학과 고성수 교수). 이 가운데 저금리와 풍부한 시중자금은 바로 한은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선택한 금융완화 정책의 산물이다.
바로 이 점이 한은의 고민거리다. 서울 일부 지역의 집값을 잡자고 금리를 올리거나 돈줄을 죌 수는 없는 형편이다. 금리는 전체 경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섣부르게 금리를 올렸다가 경기 회복의 싹을 아예 밟을 수도 있다. 부동산 값을 잡기 위해 당장 금리를 손대는 데 대해선 한은은 물론 전문가들도 부정적이다. 이날 이 총재와 만난 시중은행장들도 “국내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시중의 유동성을 환수하는 출구전략을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게다가 가계부채가 많이 불어난 상황이어서 한은이 금리를 인상하는 데엔 장벽이 크다. 법 대로만 한다면 한은도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할 수 있다. 한은법 제28조에 따르면 금통위는 금융기관 대출의 기한과 담보의 종류에 대한 제한을 가할 수 있다. 또 국민경제상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 금융기관의 대출 한도를 제한하고 대출에 대한 사전 승인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직접 규제는 정부와 금융감독원이 전담하고 있다. 한은이 따로 나설 여지가 없다.
이처럼 현실적인 제약에 묶인 한은은 결국 총재의 입을 통한 구두 경고에 나선 것이다. 부동산 시장을 걱정하는 이 총재의 거듭된 발언은 금리 인상이라는 큰 칼을 쓰지 않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이 짙다는 뜻이다.
김원배·함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