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으로 치장된 아이는 창의력 떨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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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한국인 최초의 미국 의회 정치인’으로 유명한 신호범(74·미국명 폴 신·사진) 워싱턴주 주상원의원이 한국의 교육열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그는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하지만 그게 되려 아이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원도 정선군 주민 대상 특강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신 의원은 1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달리 미국 학생의 60%는 아주 어릴 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고 독립심을 키우는 연습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돈이 있어도 모른 채 하는 미국 부모와 달리 한국 부모는 비싼 사교육으로 아이를 치장한다. 이렇게 해서는 아이가 절대로 창의적인 길을 걸어갈 수 없다”고 충고했다.

그는 17일 국회에서 열린 한보협(한나라당 보좌관 협의회) 초청 강연에서도 한국 교육을 걱정했다. “배운 것을 시험지에 그대로 받아적는 ‘원숭이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국의 브랜드가 높아질 것이다.”

신 의원에게 한국과 교육의 의미는 각별하다. ‘가난한 소년에서 상원의원’으로 변신한 자신의 인생은 교육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나 교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사람의 어린 시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네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도 헤어져 남대문 거리에서 연명했다. 그러나 18살 때 미군 대위에게 입양돼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영어사전을 씹어먹으며 대입 검정고시를 1년 반 만에 합격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렇지만 황인종을 비하하는 말(yellow thing: 노란 녀석)을 듣고 이유 없는 폭행도 당했다.

30년간 하와이대 사학과 교수를 지낸 그는 1992년 미국 사회에서 겪은 인종차별을 없애겠다며 정치에 입문했다.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주 하원을 거쳐 4선 주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2년 각종 문서에 쓰이는 동양인 호칭을 ‘오리엔탈(oriental)’에서 ‘아시안(asian)’으로 변경하는 법안을 제출한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신 의원은 “법률이 통과된 다음날 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셋째 아들에게 전화를 받았다”며 “흑인을 비하하는 용어를 없애려고 1962년 아버지가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연설했던 내용과 비슷해 눈물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신 의원은 15일 정선고를 방문한 숙명여대 한영실 총장과 만나 지역의 리더를 뽑는 ‘지역핵심 인재전형’에 관심을 보였다. 태어난 뿌리를 이해하는 인재를 찾아다니는 의지가 자신과 같아 반갑다는 것이었다. 그는 2000년 ‘한미정치교육장학재단’을 만들어 미국 사회에서 한인들이 정치적 기반을 넓힐 수 있도록 돕기 시작했다. 2004년 첫 수혜자로 강석희 캘리포니아 주 시의원이 당선됐다. 그는 현재 어바인시의 시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 의원은 “한 개 주에 적어도 한 명의 한인 의원을 배출해 30년 안에 한인 출신 대통령이 나오도록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내용을 담은 ‘오직 나의 길’이라는 자작시를 늘 품에 안고 다닌다. 그의 인생은 자서전『공부 도둑놈, 희망의 선생님』과『기적을 이룬 꿈』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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