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식 전 주미대사 퇴임 … “외교부, 거미 말고 불가사리 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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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가 되지 말고 불가사리와 같은 조직이 되어야 한다.”

16일 퇴임식을 하고 36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감한 이태식(사진) 전 주미 대사가 퇴임사에서 남긴 말이다. 머리 부분이 손상되면 전체 기능이 마비되는 거미는 중앙집권형 조직을, 주요 기능이 신체 각 부위에 분산돼 있어 머리 부분의 눈이나 중추신경이 다쳐도 자생력을 회복하는 불가사리는 자율형·분권형 조직을 각각 비유한 말이다.

이날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13명의 퇴임 외교관을 대표해 퇴임사를 한 이 전 대사는 “외교부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며 “거미와 같은 톱다운 정책이 아니라 불가사리처럼 자생력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자신이 느낀 외교부의 문제점에 관한 따끔한 지적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본부와 재외공관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긴밀한 의사소통이 더없이 중요하다”며 “언제부터인가 서로 진지한 의견 교환을 하는 분위기가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외교 일선에서 느낀 고충을 대변하듯 “수십 년간 경험을 갖고 현지에서 외교에 임하는 공관장의 판단과 식견을 신뢰해 달라”는 말도 남겼다. 외교관 후배들에게는 “이해타산만 생각하는 ‘맨 오브 인터리스트’가 되기보다는 모든 소양을 골고루 갖춘 ‘맨 오브 인테그리티’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참석자는 “이 전 대사가 떠나는 마당에 할 말이 많은 듯했다”며 “오랜 외교관 경험에서 우러나온 고언인 만큼 후배들이 깊이 새겨야 할 말이 많았다”고 전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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