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법정 세우려던 인권운동가 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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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러시아의 유명 인권운동가인 나탈리야 에스테미로바(50·사진)가 15일(현지시간) 피살된 채 발견됐다고 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현지 인권단체 ‘메모리얼’ 소속인 에스테미로바는 분리·독립 성향이 강한 러시아 남부 체첸 자치공화국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인권유린 사례들을 집중 고발해 왔다. 그의 시신은 이날 오후 5시30분쯤 체첸과 인접한 잉구세티야 자치공화국 나즈란 시의 한 숲 속에서 발견됐다.

러시아 내무부 대변인은 “머리와 가슴에 총상을 입었으며 이날 오전에 피살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에스테미로바는 이날 오전 8시30분쯤 체첸 수도 그로즈니의 자택 근처에서 괴한에게 납치됐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포함한 러시아 고위 관료들을 법정에 세울 만한 러시아군 인권유린 증거를 확보해 이날 발표할 예정이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러 인테르팍스 통신은 그의 피살 소식에 격노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사건 수사를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검찰 수뇌부에 지시했다고 전했다.

‘메모리얼’ 소장인 올레크 오를로프는 이번 사건의 배후로 람잔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을 지목했다. 한때 체첸 분리·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반군 출신의 카디로프는 이후 크렘린의 지원을 받아 체첸 대통령에 오른 친러시아계 인사다. 오를로프는 “카디로프가 이전에도 에스테미로바를 협박한 적이 있으며 그녀를 ‘개인적인 원수’로 간주해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카디로프는 자신에 대한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 범인을 찾아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은 “에스테미로바는 체첸에서의 인권유린 문제를 집중 보도하다가 2006년 피살된 여기자 안나 폴리트콥스카야의 친구”라고 전했다. 폴리트콥스카야는 모스크바의 자택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폴리트콥스카야의 변호사도 올 1월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미국도 이번 사건에 각별한 관심을 표시하며 러시아 정부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철저하고 독립적이며 투명한 수사를 보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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