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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 경계 사라져 융합 기구 설립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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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통합방송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낸 김정기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방송법과 방송위원회 조직엔 위헌 소지가 많다"며 "방송통신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새 방송통신 정책과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케이블TV 업계에서도 "방송과 통신을 함께 바라보고 공정한 정책을 펼칠 방송통신 융합기구를 조속히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선거 공약 중 임기 내 방송통신위원회를 설립해 방송통신 관련 기구를 일원화하고, 매체 간 균형발전을 통해 방송산업을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두 방송통신위원회 설립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지금의 방송위원회는 1981년에 설립된 방송위원회와 92년에 만들어진 종합유선방송위원회가 99년 12월 5년간의 논의 끝에 간신히 국회에 통과된 통합방송법에 근거해 2000년 3월 출범한 통합방송위원회다. 사실 방송법의 통합 및 이에 따른 방송위원회 통합은 95년부터 논의됐다. 유선방송이 뉴미디어였던 당시, 케이블TV가 개국하고 보니 세계는 이미 위성방송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위성방송을 담아낼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이를 위한 방송법 개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법은 왜 그리 단명한 것인지, 통합방송위원회가 사업권자로 선정한 위성방송이 2001년 출범하고 2002년 본방송을 개시했지만 디지털방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방송 서비스에 관한 법적 근거는 2004년 3월 방송법 개정을 통해 겨우 이뤄졌다. 그리고 이에 관한 세부 규정을 담은 시행령 개정은 아직도 완료되지 않았다.

최근 한 시중은행이 TV 뱅킹 서비스를 시작했다. 은행 고객이 은행에 직접 가지 않고도 TV 리모컨 조작만으로 계좌 조회 및 송금.이체.대출.신용카드 등 다양한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서비스가 방송 서비스일까, 통신 서비스일까? 통신 서비스다. TV 화면을 통해 서비스받음에도 불구하고 이용하는 망이 통신망이기 때문에 통신 서비스다. 만일 동일한 서비스가 방송망을 통해 이뤄진다면 이것은 방송 서비스이기 때문에 아직 그 실행 근거가 없어 시청자는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외국에서는 이미 방송과 통신의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아직도 공공복리 위주의 방송정책과 산업진흥 중심의 통신정책 사이의 간극이 커 사업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탈규제를 통한 다양한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곳으로 몰리는 게 당연한 이치이다 보니, 동일한 서비스에 대한 이중 잣대의 시대가 오래가면 갈수록 방송산업은 퇴행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양자의 조화를 이뤄야 하는 이러한 현실적 상황이 방송통신위원회 설립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는 네트워크의 세계다.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인 사회에서 방송통신 융합은 바로 이런 네트워크 활용도를 극대화해 국민 생활의 질적 향상 및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올려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유희락 스카이라이프 정책협력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