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의 성공 기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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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우주사업은 본질적으로 어렵다. 자동차의 부품 수가 1만 개 정도인 데 비해 우주발사체에는 약 30만 개의 부품이 들어 있다. 이렇게 많은 부품을 실패 없이 작동시킬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 나라의 과학기술력이다. 따라서 우주사업의 성과로 한 나라의 기술 수준이 단적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도 나로호를 발사함으로써 세계 기술올림픽에 첫 데뷔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우주기술은 실패 위험도 높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미국과 러시아·일본 등 우주 선진국들은 자국 로켓 브랜드를 갖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예산을 투자하고, 수차례의 실패를 극복한 끝에 자국 로켓을 보유할 수 있었다. 미국의 로켓 연구는 1910년 로버트 고다드 박사에 의해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독일의 폰 브라운 박사가 이끄는 페네뮌데 팀을 데려와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으나 실패만 거듭하다가 57년 말에야 아주 작은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는 40년께 로켓 개발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에서 남은 페네뮌데 팀들을 데려와 본격적으로 개발했는데, 57년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의 성공까지 약 15년이 걸렸다.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영국이 가장 먼저 우주개발 사업을 시작했으나 우주 진입에는 실패를 거듭했다. 75년 유럽우주기구(European Space Agency)가 만들어진 이후 88년 비로소 인공위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이 같은 외국의 전례에서도 알 수 있듯 우주산업에는 실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발사 한 번의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어떻게 지속적으로 우주산업을 키워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진정한 실패는 우주산업을 포기하는 것이고, 진정한 성공은 우주산업을 더 힘차게 밀고 가는 것이다. 이러한 성패는 우리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47년 서울대를 세울 당시 미국인 고문관은 공과대학에는 기계·전기·화공·토목의 네 학과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한국에서 라디오나 선박을 만들 가능성이 없으니, 그런 학과는 필요 없다는 의미다. 단지 현재 부진하다는 이유로 특정 종목을 포기한다면 우리나라의 조선산업, 자동차 및 전자산업도 지금처럼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 86년 미국에서 우주공학 박사 과정 학생의 국적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학생 5분의 1이 한국인이었고, 87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한국 출신 과학자도 가장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바로 우리나라의 인적 자산은 이미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며, 소질과 가능성을 검토했을 때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땅에서 우리의 인공위성을 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가 힘차게 도약하기를 기대하며, 정부와 국민의 지속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달과 화성에 갈 날도 꿈꿔 본다.

박철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