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압력에 한남투신 사태 꼬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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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영업정지중인 한남투자신탁증권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원리금 보장' 을 요구하는 고객들의 집단항의가 거세지고 투신권 전체에 환매사태 조짐이 일어나는가 하면 지역정서를 고려한 지방자치단체장.국회의원들까지 금융당국에 "최소한 원금은 보장" 을 촉구하고 나섰다.

영업정지중인 한남투자신탁증권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원리금 보장' 을 요구하는 고객들의 집단 항의가 거세지고 투신권 전체에 환매사태 조짐이 일어나는가 하면, 지역정서를 고려한 지역자치단체장까지 금융당국에 '최소한 원금은 보장' 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여권은 "실적배당 상품도 원금은 보장해야 한다" 는 입장을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융전문가들은 "신탁상품은 운용실적에 따라 지급한다는 것이 대원칙" 이라며 이번에 또 원금을 보장하는 선례를 남길 경우 3백조원이 넘는 은행.투신사의 신탁상품은 영영 원금을 보장해줘야 할 판이라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위원회는 '원리금 보장 절대 불허' 라는 당초 원칙을 고수하면서 대한투자신탁을 가교 (架橋) 투신사로 삼아 계약이전한 뒤 청산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다.

금감위는 19일 ^한남투신 고유재산 부족분 7천억원은 투자신탁안정기금에서 지원하고 ^이와 별도로 고객 환매용 자금으로 2조원을 증시안정채권 매각대금으로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또 투신안정기금에서 빌려온 7천억원을 상환하기 위해 기존 투신고객의 수수료를 0.1%포인트씩 올려 보충토록 할 방침이다.

이는 결국 한남투신 부실 책임을 투신업계는 물론 전체 투신고객에게 전가하는 셈이어서 고객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 원리금 보장 여부가 관건 = 금감위는 19일 한남투신 사태와 관련, 모든 신탁상품의 원리금을 보장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원리금 보장은 결국 재정지원으로 해야 하는데 이는 곧 국민세금으로 투신 고객을 지원하는 셈이 된다.

그럴 만한 돈도 없고 그럴 명분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남투신 직원 및 고객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입장은 다르다.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파산한 신세기투신의 경우 인수회사인 한국투신에 1조5백86억원을 지원해 원리금을 지원했다.

5개 퇴출은행 신탁의 경우도 실사기간 중 만기가 돌아오는 경우 원금과 정기예금 금리를, 중도상환하는 경우 원금을 보장해줬다.

그런 금감위가 한남투신 고객에겐 유독 '원리금 보장 불허' 를 고수하는 것은 '지역 역차별' 이란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금감위는 신세기투신과 퇴출은행 처리시 실적배당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점은 인정하되 이번에는 기필코 '신탁상품의 운용책임은 투자자가 져야 한다' 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 감독당국의 혼선이 문제 = 금감위의 정책이 여론과 주변 압력에 따라 수시로 왔다 갔다 한 것이 이번 한남투신 사태를 증폭시켰다는 게 투신업계의 지적이다.

금감위가 내놓은 한남투신 처리의 당초 원칙은 실사후 실적 배당이었다.

그러나 지난 18일 금감위는 "제3투신사가 한남의 신탁재산을 떠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 중" 이라고 공식발표했다.

이것이 청산이나 위탁관리 형식보다 투신 고객이탈과 금융경색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게 금감위의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고객 원리금은 대부분 보장될 것이란 얘기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투신업계는 한번 원칙이 정해지고도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수시로 바뀌는 금감위의 정책을 도대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 해결책 없나 = 우선 정부의 확고한 원칙이 결정되고 이것이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

실적배당 방침 고수에 따른 손실.비용과 방침 포기로 인한 비용.손실을 면밀히 따져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이냐에 따라 원칙을 세워야 한다.

원칙이 서면 이를 국민들에게 적극 알려 설득과 지지를 끌어내면 된다.

지역 고객들이 대거 몰려들어 항의하고 국회의원.지자체장이 나선다고 당초 방침에서 후퇴하는 모습이 계속돼서는 향후 금융 구조조정과 관련, 금융기관과 고객의 반발을 무마시킬 설득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정재.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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