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적자 기아자동차 '뻥튀기'관행이 회계부실 키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올 상반기 기업수지가 사상최악의 적자를 낸 가장 큰 요인은 기아.아시아자동차와 은행들의 엄청난 적자였다. 이 두가지 요인이 전체적자의 90%이상을 차지했다.

단일기업으로 최대의 적자를 기록한 기아자동차의 상반기 적자는 4조2천여억원. 기아측은 이중 3조원은 지난 91~97년까지 회계처리시 오류로 누락된 것을 이번에 반영한 것이라고 반기보고서 주석을 통해 밝혔다.

이같은 누적적자가 7년간 감추어질 수 있었다는 건 말이 오류지 한마디로 장부조작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같은 은닉적자는 지난 12일 기아차 입찰에 참여한 내외국업체들에게 이미 공개된 사실이다.

하지만 외국업체들은 이마저 믿지못해 "낙찰후 숨겨진 부실이 추가로 드러나 당초 기아측이 제시한 자산규모와 10% 이상 차이날 경우 낙찰자와 채권단이 부채탕감 규모 및 상환일정을 재협상한다" 는 요구조건을 내세우기까지 했다.

기아차의 분식회계는 대개 ▶외상매출금 2중 계산 ▶부채누락 ▶공 (空) 리스 등 우리 기업들의 전형적인 회계장부 조작 방식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상매출금 2중 계산은 계열사에 빌려준 돈을 받고도 안받은 것으로 처리하는 방법. 이럴 경우 받을 돈과 받은 돈이 2중으로 계산돼 자산을 2배로 부풀릴 수 있다.

기아차의 경우 이런 방식으로 약 1조6천억원의 자산을 '뻥튀기'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채누락은 주로 미지급 비용을 장부상에서 누락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동차 한 대를 팔았다면 향후 보증비는 약 50만~1백만원쯤을 비용으로 처리해야 한다. 이때 보증비용은 채무가 된다.

그러나 이 보증비용 (채무) 을 다음 회계로 넘겨버리고 판매한 차값만 매출로 잡는 것이다. 기아차의 경우 이같은 부채누락 규모는 약 4천억원으로 추산된다.

공 (空) 리스는 장부상엔 장비를 임대했다고 해놓고 실제 설비는 들여오지 않는 것이다. 기아차의 경우 이같은 '가짜 자산' 이 정확히 얼마가 될지는 정밀 실사가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게 국내 회계법인들의 지적이다.

기아차의 분식결산은 기아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 하다.

분식결산이 가능하려면 해당 회사가 장부를 조작하고 이를 감사하는 회계법인이 눈을 감아줘야 하고 또 감독당국의 감사에서 적발되지 않아야 한다.

한마디로 국내 회계제도.관행의 총체적 부실이 이번 기아차의 분식결산을 가능케 했던 셈이다.

증권감독원 관계자는 "인력.예산부족으로 1년중 상장사의 10%정도만 무작위 추출을 통해 회계장부를 감리하는데 7년간 기아차는 한번도 감리대상이 아니었다" 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삼일회계법인의 김일섭 (金一燮) 부회장은 "기업.회계법인의 유착고리를 끊고 기업의 장부조작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감사인의 독립성 확보가 시급하다" 고 말했다.

이정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