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위기의 아소 ‘총선 승부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회를 해산하고 국민에게 ‘표의 심판’을 받기로 한 아소 다로(麻生太郞·사진) 일본 총리의 고뇌는 크다. 21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음 달 30일 총선을 치르기로 했지만 자민당 정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야당 등 외부는 물론 자신을 퇴진시키려는 내부와도 동시에 싸워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아소를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은 가장 큰 배경은 그의 전임자들이 물려준 ‘부(負)의 유산’이었다. 일본 최고의 인기 총리로 꼽혔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5년5개월 동안 재임하면서 추진한 성역 없는 개혁은 소득계층 간 격차 확대 등 ‘개혁의 피로’를 초래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등이 뒤를 이었지만 과도한 개혁에 따른 사회적 불만과 후유증을 치유하지 못했다. 이들은 한계에 부닥쳐 잇따라 총리직을 내던졌고 이는 민심 이반을 가속화했다.

일본은 외교 분야에서도 과거사 문제 등으로 한국·중국과 멀어져 있었다. 아소는 관계 개선을 위해 아시아 중시 외교에 총력을 기울였고, 고이즈미 개혁의 상징이었던 우정성 민영화 재검토를 시도하는 등 인기 회복책에 나섰다. 그러나 세계 불황이 다시 발목을 잡았다. 세 차례에 걸쳐 총 200조 엔을 능가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실업자가 속출하는 등 속시원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는 자민당의 정책 부재라는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자민당을 사실상의 ‘난파선’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일본 국민은 민주당에 눈길을 돌렸다. 1996년 출범 이후 오랫동안 집권 능력을 의심받았지만 정당 정책(매니페스토)과 건설적인 대안을 당당하게 제시하고, 자민당과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등 책임 있는 야당의 모습을 보이면서 점수를 땄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가 불법 정치자금 문제에 휘말리자 전격적으로 대표를 교체한 것도 국민에게 신뢰감을 심어 줬다.

아소가 국회 해산의 카드를 빼든 것은 이런 복잡한 사정의 산물이다. 총리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의원내각제에서 의미가 큰 내각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고 중의원 임기 만료일(9월 10일)이 임박해 오자 임기에 앞서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자민당 내부에선 ‘총리 교체 후 총선’을 주장하는 반(反)아소 세력의 저항도 거세다. 아소 체제로는 총선 승리가 어렵다는 이유다. 출사표는 ‘총리 교체설’에 맞서 자신을 지키려는 복안도 깔려 있는 것이다.

전격적인 승부수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정권 교체를 통해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태도 변화는 올 4월 이후 민주당이 지지한 30~40대의 젊은 후보들이 지바(千葉)시·시즈오카(<9759>岡)현 등의 단체장 선거에서 잇따라 승리하면서 표면화됐다. 12일 도쿄도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58명의 후보자 가운데 54명이 뽑히는 ‘싹쓸이 당선’을 기록했다. 정권 교체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투표율이 종전보다 10.5%포인트 치솟은 것도 민주당 압승의 견인차가 됐다.

정권 교체 열기는 총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아사히(朝日)신문이 도쿄 선거 출구조사에서 실시한 ‘차기 총선거 지지 정당’ 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46%)가 자민당(19%)을 두 배 이상 앞질렀다. 40대 남성 회사원은 “정권이 언제든 바뀔 수 있어야 정치인들이 긴장감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30대 여성 회사원은 “실효성 없는 경기대책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자민당 지지에서 민주당으로 ‘전향’한 이유를 밝혔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