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스마트 그리드를 녹색성장 중심축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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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한국이 G8 비회원국으로서는 유일하게 7대 미래환경기술 개발 선도국가로 지정됐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기술 역량과 개발의지가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는 뜻이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 전략과 스마트 그리드 정책이 처음으로 국제무대에서 빛을 발한 국가적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가 스마트 그리드 선도국가로 지정된 것은 그 자체로도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앞으로 관련 기술 개발과 시스템의 표준화 과정에서 얻게 될 유·무형의 이득 또한 막대하다는 점에서 뜻깊다.

스마트 그리드는 원자력·수력 및 화력발전소 등에서 생산된 전력이 송전망 및 배전망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grid)을 보다 똑똑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여기서 ‘스마트’하다는 것은 전력망의 이용과 관리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뜻이다. IT를 이용해 전력망을 구성하는 각종 기기들의 고장을 신속하게 진단하고 처리할 수 있게 함은 물론이고, 심지어 고장 발생 이전에도 그 징후를 예측해 고장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게 한다. 또 전력의 수급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수급상황별로 요금을 차등 부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유휴 발전설비와 전력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이와 함께 소비자도 자신의 전기사용량과 전기요금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 개인의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전반적인 에너지 절약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태양광·풍력·바이오 및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기술의 발전 또한 스마트 그리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러한 신재생에너지가 기존 전력망에 연계돼야 비로소 진가를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연계 과정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스마트 그리드 기술이다. 기존 전력망은 발전소에서 고객에게까지 전기가 흘러오는 단방향이다. 그러나 대관령 풍력단지, 새만금 풍력단지 및 제주도 태양광발전단지 등 민간이 개발한 다양한 발전설비에서 생산한 전기를 이용하려면 이를 기존 전력망에 연결시켜야 한다. 전기가 쌍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새로운 전력망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유지·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그리드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다 앞으로 개발될 스마트 그리드에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것처럼 미래의 전기자동차에 전기를 충전할 수 있는 기능도 부가하는 등 다양한 응용 가능성이 열려 있다. 스마트 그리드를 중심으로 전후방 연관 기술과 산업의 발전 여지가 그만큼 큰 셈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스마트 그리드 관련 시장 규모가 최소 3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잘만 활용하면 스마트 그리드가 녹색성장의 중심축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한국은 11월 15일까지 국가 단위 로드맵을 작성해 기후변화 주요국 회의에 제출해야 한다. 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선도국으로서의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한국형 스마트 그리드가 국제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학계와 산업계, 정부가 힘을 합쳐야 할 때다.

김철환 성균관대 교수·정보통신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