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특별사면 특징…체제 자신감 '공안' 대폭 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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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번 8.15 특별사면은 이른바 '양심수' 시비의 대상이 됐던 공안사범들을 대폭 석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석방된 공안사범 94명 가운데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남파간첩과 각종 지하조직 사건 연루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을 만큼 획기적인 조치다.

이는 냉전 종식 이후 시대상황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이제 우리 사회도 체제.이념문제에 관한 한 과거의 혼란을 이겨내고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정부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꺼번에 많은 수의 '위험인사' 들을 풀어줘 혼란을 자초한다는 우익단체들의 우려가 있었으나 체제 안정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 이라고 말했다.

공안사범에 대한 대폭적인 사면에 따라 우리나라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도 한단계 높아질 전망이다.

그동안 국제사면위원회 (앰네스티) 등 국제적 인권단체들은 끊임없이 양심수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나라를 '인권후진국' 으로 폄하해 왔으며 이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 정부에 큰 짐이 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번 사면을 앞두고 일제시대 이후 존속해 온 '사상전향' 제도를 폐지하고 준법서약서 제도를 도입하는 등 많은 준비와 검토를 거쳤다.

그러나 이번 사면에서 미전향 장기수 17명이 준법서약서 제출을 끝내 거부해 사면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길게는 40여년을 감옥에서 보낸 장기수들에 대한 석방을 적극 검토했으나 "실정법을 지키겠다는 서약 없이는 그 누구도 석방해 줄 수 없다" 는 원칙을 고수했다.

한편 정부는 각종 경제사범의 경우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자 등에 대해 사면혜택을 베풀었으나 IMF 경제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사면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한보사건의 정태수 (鄭泰守) 한보총회장.이철수 (李喆洙) 전 제일은행장 등이 사면대상에서 빠졌다.

그러나 한보사건 연루자중 권노갑 (權魯甲) 전 의원을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이 사면된 데 대해서는 형평성 시비와 함께 시기적으로 성급한 결정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같은 사건 연루자중 홍인길 (洪仁吉).황병태 (黃秉泰).김우석 (金佑錫) 전의원은 청구사건 등 새로운 범죄로 수사대상에 올라 있어 이번 사면에서 제외했다" 고 해명했다.

최근 국가기강 확립차원에서 정.관.재계 등 사회 전분야 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 사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거액의 뇌물로 유죄가 확정된 인사들에 대해 사면을 단행한 것은 정부의 사정 의지를 의심케 하는 특혜가 아니냐는 시비를 불러일으킬 소지를 남겼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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