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넣는 '오일 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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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평주유소의 ‘오일 천사’ 민영구 대표(中)가 장애를 딛고 주유원으로 일하는 김영찬(左).신명섭씨와 함께 평생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가평=전익진 기자

26일 오후 5시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대곡리 경춘국도변에 있는 가평주유소.

남이섬에서 서울 방면으로 향하던 승용차 한대가 들어온다.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 주유원 두명이 밝은 미소로 일어나 차를 주유구 쪽으로 안내한다. 그런데 이들의 행동이 왠지 불편하고 느리다. 말씨도 어눌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잰걸음으로 뛰면서 "어서 오세요"라며 상냥하게 손님을 맞는다.

이 주유소의 주유원 세명은 모두 장애인이다. 신속한 서비스가 중요한 주유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이래서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민영구(40)대표는 주변에서 '오일 천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민씨가 이 주유소를 인수한 것은 지난해 5월, 이곳에서 일하던 다섯명의 주유원 중 왼쪽 팔과 다리를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김영찬(30.지체장애 3급)씨가 있었다. 민씨는 김씨가 주유소를 그만두면 딱히 할 일이 없다는 사정을 듣고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후 김씨의 행동을 살펴보니 비록 몸이 불편해 행동은 느리지만 일을 아주 열심히 하고, 정성을 다해 손님들을 대하고 있었다. 손님 중 일부가 "서비스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상당수는 김씨의 정성어린 서비스에 만족을 표시하며 주유소를 떠났다.

이런 김씨에게 감동한 민 대표는 "일이 더딘 데 따른 약간의 영업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이참에 직장을 얻지 못해 애태우는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그는 지난 1월 인근에 사는 신명섭(27.정신지체 1급)씨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김형수(31)씨 등 두명을 채용했으며 이후 장애인 주유원만으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어디 가서도 환영받기 어렵고 더군다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도 곤란한 장애인들이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에 행복감을 느낍니다."

민 대표는 주유원들과 수시로 대화의 시간을 만들어 고충을 살피고 있다.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계속 챙겨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글과 숫자 개념이 약한 신씨에게는 틈을 내 한글과 산수를 가르친다. 민씨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일자리를 얻은 신씨는 칠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부양하며 생활에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주유원 김영찬씨는 "기회를 주신 분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더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으며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평=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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