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만난 사람들]5.끝 여성들이 서 있는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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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 사회의 견고성을 완성해가는 추진력의 중심축에 여성들은 어디쯤 자리잡고 있으며 그들의 역할분담과 영향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이런 명제와 의문은 이번의 방북답사 계획에 물론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평양에 도착해 이틀 밤을 잘 동안 나는 문득 이 문제에 대한 긴장성을 깨달았다.

평양시내 길거리를 무심히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바라보이는 여성들, 혹은 여관의 종사원들이나 답사지의 해설원들을 만나면서부터 나는 북한에서 여성들의 지위와 사회적 역할이 결코 지나쳐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 여성들은 북한 사회의 중심축에 어느 계층보다 완강하게 뿌리박고 뚜렷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불과 두 발짝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와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악천후 속을 뚫고 백두산 장군봉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놀랍게도 제복을 차려 입은 한 앳된 모습의 여성이 느닷없이 안개 속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곳에도 여군들이 주둔하고 있구나.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우리에게 백두산 명소들에 대한 안내와 해설을 해주기 위해 나타난 여성강사 리희옥 (24) 이었다.

그녀는, 보이는 것이라곤 바람과 구름과 안개뿐인 백두산정의 외로운 막사에 상주하면서 백두산을 찾아오는 탐승객들에게 해설을 들려주고 있는 4명의 여성중 한명이었다.

나는 그녀를 백두산에서 삼지연까지 사뭇 뒤따라 다니며 예민하게 관찰했지만, 여성으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을 황량하고 고적한 근무환경에 대해 회의나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징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직무에 자부심까지 갖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갔던 북한의 모든 역사유적지와 명소들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든 한두 곳을 제외하고 안내해설자는 한결같이 여성들이었다.

동물원에서도 안내해설자는 여성이었다.

예외가 있었다면, 북한이 자랑하는 여성전용 산부인과병원인 평양산원의 안내해설자는 공교롭게도 남성이었다.

평양 시내에 있는 만수대창작사를 찾아 갔을 때도 일선에서 일하는 남성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성들의 자질과 지혜를 극대화시킨 모습은 북한의 수예연구소를 찾아가면 극명한 사실로 나타난다.

평양 방문 9일째인 7월 15일. 우리는 평양제일고등중학교와 중앙력사박물관을 거쳐 수예연구소를 찾았다.

그 곳을 돌아보는 동안 나는 북한 여성들의 소질과 총명함이 하나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예술적 성취도는 차치하고 수예품의 사실적 완성도는 완벽 이상이었다.

예를 들어 수채화나 유화를 그대로 복사한 완제품을 손으로 만져보기 전에는 제 아무리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림인지 수예인지 사진인지를 판별해 낼 수 없다.

북한에서는 일찍부터 수예에 자질있는 여성들을 발굴해 소년궁전과 수예연구소에서 숙련도에 따라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세계적 수준을 선도하고 있을 그 완벽한 복제. 복제도 완벽에 이르면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구나. 내게 그것은 새로운 눈뜸이었다.

한 작업실을 돌아보던 중 나는 다섯명의 여성이 공동작업으로 실물 크기의 '조선범' 을 그린 유화 한장을 수본도 없이 그대로 수예로 옮겨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혼자 그쪽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하루종일 호랑이만 수놓다가 집으로 돌아가 잠이 들면, 꿈에 호랑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녀들은 일제히 일손을 멈추고 까르르 웃어댔다.

그 방을 모두 돌아보고 나갈 때, 나는 다시 일행과 뒤처져서 그녀들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다.

"호랑이 꿈 자주 꾸지 마세요. 오줌 싸니까요. " 무례의 선까지 넘은 농담이었는데도 그녀들은 또 다시 일손을 멈추고 내가 무안할 정도로 대책없이 깔깔 웃어댔다.

아무런 복선도 없이 주고 받았던 그날의 웃음소리는 50년 가까이 막혀 있던 대화도 단숨에 풀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었다면 과장이 될까. 그러나 여성적 자질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곳에만 여성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북한 여성들의 적극적이고 당찬 성격을 다시 목격한 것은 그로부터 3일 뒤, 우리들이 묘향산을 찾아갔을 때였다.

묘향산 초입 못미친 얼마 동안의 구간에서는 마침 도로확장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 공사현장에서 여성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느 한사람 게으름 피우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던 그곳에서 북한 여성들은 억센 남성들과 조금도 차이를 두지 않는 강도높은 작업을 치러내고 있었다.

자신들의 정치사회적 지위를 스스로의 힘과 기량으로 쟁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여성들이 감당해야 할 일을 무서워한다거나 주저하는 기색을 나는 북한 방문 보름동안 단 한번도 목격할 수 없었다.

그런 북한 여성들의 적극적인 태도를 우리 일행의 금강산 안내와 해설을 담당했던 엄영실 (24) 의 모습에서도 익숙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체류하고 있던 호텔과는 거리가 먼 온정리에 살고 있는 그녀는 언제나 약속시간 전에 호텔에 도착해 우리들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고, 자신의 담당구역도 아닌 내금강까지 동행해 그곳 해설원의 설명을 꼼꼼하게 받아 적으며 학습에 열중했다.

처음 금강산에 가 그녀를 만났을 때 우리를 안내하며 들려주었던 해설은 그야말로 금강산 계곡물이 흘러가듯 거침없이 유장하였고 금강산에 솟은 봉우리들처럼 우쭐거리는 판소리의 음악성까지 유지하는 것이었다.

"…금강산 십대미 (十大美)에 대해서 말씀 드린다면, 기세차고 웅장하고 씩씩하고 장엄한 산악미, 물과 돌과 나무와 바위들이 서로 조화된 계곡미, 아늑하고 온화한 호수미, 금강의 절경을 동해에 옮겨놓은 해양미, 조선의 금강산과 멀리 동서남북을 한 눈에 담아보는 전망미, 감탄과 황홀과 장쾌와 놀라움의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아 - 하는 감탄미, 울창한 수림과 특수식물을 보게되는 수림미, 선조들의 슬기와 지능을 보여주는 건축조각미,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색들의 집결체인 색채미, 금강산의 명물인 바람과 구름과 안개와 봉우리와 계곡을 어루만지고 쓸어주는 풍운조화미를 들 수 있습니다…. "

그녀와 금강산에서의 5일 동안, 우리는 남쪽 사람이고 자기는 북한 사람이라는 거리감이나 서먹서먹한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결국은 계획된 일정 때문에 빗속을 무릅쓰고 온정리려관을 떠나던 그날 오전, 우리들을 환송 나왔던 그녀는 사뭇 우리를 외면한 채 뒤돌아 서 있었다.

눈물 젖은 얼굴을 우리에게 보이기 싫었던 까닭이었다.

우리의 유행가사처럼 남자의 등뒤에 서 있기를 거부하는 북한 여성이 보여주는 또 다른 진솔한 모습이었다.

글 = 김주영 (소설가) 사진 = 김형수 (통일문화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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