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와대는 "하는 일마다 꼬인다 꼬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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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와대 사람들의 표정은 예전 같지 않다. 대화보다 침묵이 길다. 어렵고 꼬이기만 하는 국정 상황의 반영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상의 교신 보고 누락 사건의 진행 상황이 좋은 예다. 그러다 보니 야당의 공격도 예사롭지 않다. 그것에 대응하다 보니 본질 문제는 가려지고 지엽적 문제만 부각되는 게 더욱 안타깝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 5월 13일 직무복귀 직후 50%대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6월 이후 30~35%대에서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청와대가 스스로 분석한 대통령 지지도 하락의 요인은 '경제 위기 관련 발언' '김선일씨 피살' '의문사위 활동' '수도 이전 논란' 등 네 가지다.

"경제위기 아니다" 영세민도 등돌려 지지율 급락

◆ "경제위기 아니다"가 지지 하락 발단=5월 하순 "경제, 위기는 아니다"는 노 대통령의 언급으로 지지도가 쑥 꺼지기 시작했다는 게 청와대 측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진의는 '충분히 관리가 가능한데 자꾸 위기를 강조하면 실제 경제가 나빠진다'는 위기 예방론이었다"며 "그러나 대통령의 참뜻은 사라지고 내수.경기 부진으로 '먹고살기 어렵다'는 자영업자.영세민의 반감이 지지도 하락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김선일씨 피살 'AP문의전화' 불똥 튀어서…

◆ 뜻하지 않은 김선일씨 사건=지지도가 사흘 사이에 5~6%포인트 하락하는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6월 23일 김선일씨 피살과 관련된 외교통상부의 부실 대응 의혹이 제기되면서였다. 불똥이 청와대로 튄 것이다. AP통신이 외교부 직원에게 한국인 피랍을 문의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게 결정타였다. 그 후 교민안전 대책에 의문이 제기되고 범정부적 차원의 대테러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청와대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지지도 하강을 가져왔다.

"일본 정부는 살려냈는데…"라는 자존심의 상처, 서운함이 뒤섞이며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가 증폭된 것으로 청와대는 분석했다.

의문사위 파문, 노대통령 "내가 지시 안했는데"

◆ "대통령 직속 의문사위 명칭 바꿔야"=7월 1일 의문사위의 '남파 간첩과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 3인의 민주화 운동 기여' 결정 등은 청와대에 깊은 속병을 안겼다. 친노 성향인 네티즌조차 거부감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며칠 뒤 한 회의에서 "자꾸 의문사위 앞에 '대통령 직속'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이걸 다른 표현으로 바꿀 수 없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내가 지시한 일도 아닌데…"라며 의문사위 활동이 대통령의 의중과 관련 있는 것처럼 비치는 데 대한 고민이었다. 고도의 독립성이 보장된 기관이라 대통령이 의견을 내기도 어려운 터였다.

당.정.청이 최근 "대통령의 짐을 덜어주자"며 국회 직속 기관으로의 탈바꿈을 모색한 이유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상당수가 "의문사위의 논리가 국민 정서를 앞서 나갔다"고 지적했다.

수도이전 논란, 수도권 반대정서 안이하게 대응

◆ 새 수도 논란도 타격=수도 이전 논란은 '김선일씨 피살'에 버금가는 타격을 가해왔다. "지속적으로 지지도에 영향을 미치는 살아있는 소재"라는 게 청와대의 분석이다. '국토의 균형발전'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이라는 여권의 원론적 철학과 논리가 잘 먹혀들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자체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설득해야 할 요체는 인구의 48%가 거주하고 있는 수도권 주민이었다. 전국의 여론은 찬성(42%)이 반대(50%)를 따라가고 있지만 수도권은 70%가 여전히 부정적이라는 자체 조사를 청와대는 눈여겨보고 있다.

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가진 것을 내줘야 하는 수도권 사람들에게 과연 서울이 어떻게 더 발전할지를 구체적으로 각인시켜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는 물론 대부분 학자가 포진한 신행정수도위원회와 기획단이 전국을 대상으로 한 수도 이전 철학의 강조에만 무게를 둬 왔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여론의 중심인 수도권의 미래 비전에 대한 전략적 홍보와 설득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지적이었다.

국정이 꼬인 이 네 가지 상황에는 바로 국민 정서와 잘 맞지 않거나 너무 앞서가는 '논리의 과신'이 공통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효과적인 설득과 유연한 대응의 필요성을 새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태영 대통령 부속실장은 "노 대통령은 언제나 낙관적으로 생각해야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한다"며 "어려운 환경을 돌파해 온 스타일인 만큼 외형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도전과 동력의 계기로 삼아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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