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목경·채수영 블루스 '부활의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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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90년대 가요계의 불모성을 입증하는 지표는 많다.

록.리듬 앤드 블루스 등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인 블루스가 전멸하다시피한 현실은 그 중 대표적이다.

90년대 초반 '신촌블루스' 와 그 멤버인 한영애 등이 '누구 없소' '루실' 등을 널리 알렸지만 그후 블루스는 댄스바람에 밀려 대중의 관심권에서 멀어지며 매니어들의 음악으로 숨어들었다.

그런 가운데 고집스럽게 블루스를 지켜온 음악인들이 잇달아 신보를 내놓거나 준비중이다.

우선 95년 '60대 노부부' '빗속의 여인' 등의 노래로 블루스 대중화에 앞장섰던 기타리스트 김목경이 3년의 산고끝에 3집을 내놓았다.

95년 2집이 컨트리풍의 대중적 색깔을 앞세웠던 반면 3집은 정통 블루스 바탕 위에 친근한 멜로디를 얹어 음악성과 대중성의 조화를 꾀한 점이 다르다.

특히 3집엔 2집에서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던 김목경의 특기, 슬라이드 주법이 살아있어 블루스팬을 만족시킬 만하다.

병목처럼 생긴 반지 (보틀넥) 를 끼고 지판위를 훑는 이 주법은 블루스 특유의 끈적하면서 아롱진 음색을 내주는 원천.

김목경은 "기교 부리지않고 능력만큼만 표현하려고" 슬라이드에 집중했다고한다.

그래선지 3집 곡들은 대개 솔직하며 산뜻한 느낌이 난다.

포크풍의 타이틀곡 '내일속의 어제' 는 선율이 깔끔하고 대중적이라 성인가요로 손색이 없다.

또 제목이 묘한 '여의도 우먼' 은 방송사에서 스튜디오 문을 못열어 쩔쩔매는 자신을 도와주고 사라진 어여쁜 작가를 떠올리며 지은 곡이다.

김목경에 이어 국내에서 유일한 블루스 전문클럽 '저스트 블루스' 대표이자 기타리스트인 채수영이 오는 9월 미국의 블루스 전문레이블 '앨리게이터' 를 통해 자작곡 '저스트 블루스' 를 발표할 예정이다.

홍콩에서 영국뮤지션들과 블루스를 연주해온 채수영은 3년전부터 서울 이태원에 블루스 전문클럽을 세우고 직접 무대에 서왔지만 음반발표는 이번이 처음. 연주의 힘이 넘치고 표현력이 자유자재인 채수영은 음악인 세계에선 알아주는 일급 기타리스트여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블루스는 구슬프지만은 않고 밝은 기분도 이따금 나는 묘한 음악이다.

날씨로 치면 줄창 퍼붓는 호우 대신 비와 햇살이 혼재된 소나기형이랄까. 듣는 이의 피곤을 풀어주는 이완효과까지 있어 바쁜 현대인에게 맞는 '음악 당의정' 이라 할 수 있다.

블루스의 이런 특성은 장조와 단조가 절묘하게 섞여있는데 원인이 있다.

'블루노트' 라 불리는 블루스 기본음계는 장조면서도 단조처럼 들린다.

7음계에서 3음과 7음을 반음씩 내려쓰기 때문이다.

여기에 '레미솔라도' 5음만 쓰는 '펜타토닉' 스케일이 결합되면서 장조적인 느낌도 난다.

(국내에도 인기있는 '모 베터 블루스' 도입부가 바로 펜타토닉이다) 블루노트와 펜타토닉을 효과적으로 배합해 팝같은 블루스를 들려주는 사람이 에릭 클랩턴이다.

그러나 클랩턴으로 상징되는 화려한 개인기가 블루스의 전부는 아니다.

블루스는 테크닉보다 '필' (감정이입) 이 중요하다는게 음악인들의 말이다.

블루스가 흑인노예들의 노동요에서 기원한 '흑인 아리랑' 임을 상기하면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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