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임칙서 가문 대 이은 '아편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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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 청말 (淸末) 아편전쟁을 이끌었던 흠차대신 (欽差大臣) 임칙서 (林則徐.1785~1850) 의 직계후손이 제2의 아편전쟁을 이끌고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林의 4대손 린모칭 (林墨卿.75.별명 링칭) . 임칙서는 1840년 황제의 전권을 위임받은 흠차대신으로 임명되자 광둥 (廣東) 성 영국상인들로부터 2만3천여상자의 아편을 압수해 불살라버렸다.

유명한 후먼 (虎門) 의 아편 소각 사건이다.

영국은 이를 트집잡아 아편전쟁을 일으켰고 이후 50여년에 걸친 홍콩 병탄 (倂呑) 의 길을 열었다.

임칙서는 이 사건으로 유배돼 한을 품고 병사했고 그의 후손들은 고향인 푸젠 (福建) 성과 홍콩.싱가포르.미국.유럽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임칙서의 후예 린모칭이 마약퇴치의 기수로 떠올라 고조부의 한풀이에 나선 것은 지난 95년부터. 80년대 말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중국의 마약 중독자가 3백만명으로 늘어나자 사태 해결을 위해 중국이 대대적인 운동을 벌이면서 임칙서를 부활시킨 것이다.

중국 TV는 그 해 임칙서 탄생 2백1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린 영화 '아편전쟁' 을 제작, 방영하는 등 그의 활동을 통해 마약퇴치와 외세 저항정신을 접목하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린모칭은 49년 건국후 외교관 길을 걸으면서 85년에는 유엔 상주대표도 지냈고 정협 (政協.전국정치협상회의) 외사위원회 부주임을 끝으로 은퇴해 쉬고 있었다.

조상이 다시 부각되는데 용기를 얻은 林씨 가문에 홍콩 기업가들이 4백만 홍콩달러를 찬조해 설립된 민간조직 '임칙서 기금회의' 회장으로 95년 추대되면서 린모칭은 중국내 마약퇴치운동의 선봉에 나서게 된 것이다.

97년 그는 중국의 마약문제 전반을 다룬 책을 출판한데 이어 지난해부터 올봄까지 광둥성과 후난 (湖南) 성.간쑤 (甘肅) 성.저장 (浙江) 성 등 6개 성을 돌며 마약퇴치 전람회를 개최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지난 6월 26일 국제 마약금지일에 맞춰 임칙서의 고향인 푸저우 (福州)에 '쩌쉬 (則徐) 마약 치료센터' 를 열기도 했다.

항일전쟁 당시인 40년대 공산당 지하활동에 참여, 옌징 (燕京) 대학에서 독서회를 조직해 일제에 쫓기면서 사용한 가명 링칭으로 현재는 불리고 있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중국 신해 (辛亥) 혁명 이전의 중국 인명은 한자음을 그대로 읽도록 한 한글 표기법 원칙에 따라 임칙서 (林則徐) 는 한자음으로 표기하고 후손의 이름은 현지음으로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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