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사 모녀'의 몽골 사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 몽골 학생들이 급식 혜택을 받도록 헌신한 영양사 모녀, 박준교씨(右)와 우지성씨. 이들의 노력으로 내년 중 몽골에선 학교 급식이 시범 실시된다.

'학교급식의 대모'로 불리는 박준교(65.대한영양사협회 고문)씨. 결식아동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선물하겠다며 1981년 학교급식법의 산파로 활동했다. 그가 이번엔 같은 영양사인 큰딸 우지성(33.웰로윈도우 영양개선연구회 대표)씨와 함께 몽골에서 학교급식의 초석을 세우고 돌아왔다.

"꿀꿀이죽과 보리밥으로 연명하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험한 오솔길과 고속도로의 차이를 느낍니다. 이제 고속도로를 혼자만 씽씽 달리지 말고 우리보다 형편이 못한 나라의 길도 닦아 줘야지요."

몽골과의 인연은 우씨가 서울대 조교 시절 몽골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몽골 국립과학기술대에서 200여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영양 세미나를 했는데 반응이 너무 뜨거웠습니다. 세미나가 끝나자 학생들이 몰려와 '심한 빈혈인데 뭘 먹어야 하느냐'는 등 질문공세를 퍼부었어요."

이런 경험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도 남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구나…."

그러나 당시엔 몽골에 다시 가 이들을 돕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곧이어 결혼하고 미국에 건너가 미시간대에서 석사학위(보건학)를 받고 박사과정 진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대학 측의 제안을 뿌리치고 몽골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몽골로 달려가 그동안 배운 지식을 활용하는 게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우씨는 가족과 함께 99년 두번째로 몽골을 찾았다. 그는 당시 학생들의 영양상태를 조사한 결과 극히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특히 몽골의 초등학생은 하루에 저녁 한끼만 먹는 경우가 많아 열량 섭취가 권장량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우리 돈으로 100원만 있으면 호쇼르(몽골의 고기호떡) 한개로 허기를 달랠 수 있지만 노동자 월급이 4만원 내외여서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 식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영양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어 잘못된 식사로 건강을 해치는 것을 보고 우씨는 안타까웠다.

특히 채소가 귀한 몽골에선 육식에 의존하는 식습관 때문에 비만.심장병 등 성인병이 마치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먹은 것이 제대로 된 영양교육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울란바토르의 몽골 국립과학기술대학 영양개선연구소 초대 소장이 된 그는 먹는 것과 영양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데 주력했다.

"겨울철 영하 40도의 혹한에서 아침.점심을 걸러 열량이 모자라 추위에 떠는 학생들을 봤을 때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2001년 12월 어머니 박씨가 몽골의 학교급식 세미나에 참가한 것이 우씨의 활동에 속도를 붙여줬다. 이 자리에서 박씨가 한국의 급식에 대해 설명하자 몽골 국립과학기술대학의 곰보 학장은 "아이를 잘 먹이는 것이 몽골의 미래"라며 영양교육과 급식제도에 큰 호감을 보인 것이다.

그 후 몽골 학교급식법 제정 과정에서 한국의 학교급식법은 가장 중요한 참고문헌이 됐다. 박씨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 것은 물론이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엔 몽골의 일부 학교에서 급식이 시범 실시될 예정이다. 박씨는 서울 아현중.잠신중 교장과 서울여학생생활교육원장을 거친 뒤 2001년 여의도여고 교장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