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천적 허수아비, 실물복제 국립민속박물관서 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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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참새가 슬슬 무서워지는 계절이다. 벼가 알알이 여물어가는 8~9월, 참새떼가 논에 한번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농심은 멍들곤 했다. 세월따라 허수아비는 변했다.

짚에 천연섬유를 너덜너덜 걸쳤던 60년대에서 군복.교련복 시대를 지나 사람을 똑 닮은 마네킹까지. 다음달 6일부터 31일까지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허수아비 전시회' 는 그 역사를 보여주는 행사다.

밀양산업대 강사 정길원 (58) 씨가 20여년간 전국을 다니며 찍은 허수아비 사진과 이를 바탕으로 복원한 60여점의 실물을 전시한다. '팔 벌린 밀짚모자 아저씨' 외에도 뱀이나 독수리.족제비 같은 새의 천적 모형, 연처럼 줄을 묶어 바람에 휘날리게 한 것 등 여러 형태를 모았다.

이번 행사는 단순히 모은 자료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다음달 6일까지 신청을 받아 (02 - 734 - 1346.교환107) 7일 오후1시 박물관 경내에서 시민 2백명이 모여 직접 허수아비를 만들어 보는 기회를 갖는 것. 국립민속박물관 관리과 이현종 (45) 씨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넉넉했던 옛 시골 정취를 되살리고자 하는 취지" 라며 "가능하면 학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 고 말한다.

이어령씨는 '떠도는 자의 우편번호' 라는 글에 "과학자의 말을 들어 보면, 참새들이 허수아비를 보고 도망치는 것은 그것이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옷에 묻어 있는 사람의 체취 탓이라고도 합니다" 라고 적었다.

우리가 오늘에 허수아비를 모으고, 만들며 되살리고자 하는 것도 새를 쫓았던 '기능' 이 아니라 우리 기억속 허수아비에 묻어 남아있는 인정의 향기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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