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워싱턴시의 재정파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독립전쟁이 끝난 직후인 1783년 여름, 일단의 군인이 체불된 봉급을 지불해 달라고 당시 연방의회가 있던 필라델피아에 쳐들어와 시위를 벌였다.

큰 불상사는 없었지만 위험에 떨던 의원들은 안전한 위치에 새 수도를 만들 계획을 세우게 됐다.

후보지를 놓고 지방간의 이해가 엇갈려 갑론을박이 계속되다가 1790년에 지금의 워싱턴 지역이 결정됐다.

연방의회는 새 수도가 지방세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인구가 희박한 지역을 골라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면서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은 연방직할령 (District of Columbia) 으로 선포했다.

그래서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20여년 전까지도 연방의회의 관할을 받으며 시장조차 주민들이 뽑지 못하는 지방자치 부재 (不在)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1961년에 대통령선거권이 주어질 때까지는 어떤 선거권도 가지지 못하고 있던 것이 워싱턴 주민들이었다.

인구가 몇만 되지 않던 남북전쟁 때까지만 해도 워싱턴의 자치부재는 별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인구가 십만을 넘어서면서 '미국의 얼굴' 로서 특이점과 '하나의 도시' 로서 일반적 문제가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연방의회는 미국의 얼굴을 잘 가꾸는 데만 역점을 두고 도시의 균형잡힌 발달은 소홀히 했다. 근년 도시권이 확대되면서는 주변부가 이웃 주 (州)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워싱턴 주민의 숙원이던 완전한 지방자치제는 1974년 도입됐다.

그러나 지금 워싱턴 주민들은 그 결과에 당황하고 있다.

16년째 시장직에 있는 마리온 배리 때문이다.

배리는 1978년 이래 흑인 하층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세 차례 연임했다.

도시관리는 제쳐놓고 하층민 배만 불려주는 정책으로 인기를 유지하는 동안 시 재정은 엉망이 되고 워싱턴은 미국에서 제일 위험하고 더러운 도시가 됐다.

배리는 1990년 마약사용 때문에 반년간 감옥살이를 하느라고 한 차례 쉬었지만 4년 후 보란듯이 또 당선됐다.

연방의회와 정부는 배리 시장의 무장해제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수억달러의 빚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배리는 지난해 여름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조건으로 시 운영권의 대부분을 포기했다.

최근에는 차기 불출마를 선언했다고 한다.

워싱턴 지방자치의 파탄은 지방자치를 근년에 성취한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이다. 시작한지 몇년 안돼 벌써 여러 곳의 부채규모가 만만찮다니 배리 시장이 무색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