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기 왕위전]이창호 - 조훈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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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가슴을 쓸어내리다

제6보 (108~132) =검토실에서 서봉수9단의 목소리가 낭랑하다.

바둑은 중앙이 요체며 백이 중앙에 한수 두면 반면승부라는 얘기다.

李왕위는 비스듬히 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빗소리가 스산하게 창문을 때리고 또다시 꿈결같은 시간이 흐른다.

수순의 가느다란 실을 좇던 李9단이 110을 두고는 문득 고개를 든다.

이곳을 선수하고 중앙의 127에 두려했던 것인데 110이 자충수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당황의 흔적은 찰나에 사라지고 그는 다시 예의 포커페이스로 돌아간다. 선수로 잡힐 수는 없으므로 112에 이었다.

흑이 이 한점을 잡으면 '참고도1' 과 같은 수단이 발생한다.

110의 자충 탓이다.

117, 119.曺9단이 혼신의 힘을 다해 중앙을 요격해왔다.

고요하던 李9단의 얼굴에도 미미하게 격동의 흔적이 스쳐 지나간다.

아마도 이곳이 최후의 승부처일 것이다.

그러나 121, 이 수가 빗나갔다.

금방 실수를 깨달은 듯 曺9단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온다.

121은 '참고도2' 흑1부터 11까지의 수순이 최선이었다.

이것도 백이 반집은 두텁다지만 전도는 예측불허였다.

실전은 참고도에 비해 흑의 하변집이 많이 줄어들었다.

위기를 넘긴 李왕위는 소리없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박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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