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발부 수지부모’는 동양적 인권선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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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몸의 터럭 하나라도 감히 훼손해선 안 된다는 『효경(孝經)』 첫 장의 유명한 구절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가르침은 구시대적 ‘보신(保身)의 논리’로 자주 쓰였다. 하지만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61)씨는 이 ‘불감훼상’이란 언명에서 ‘몸 사상’에 기초한 동양적 인권선언을 읽어 낸다. 나의 몸처럼 타인의 몸도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소중한 것이며, 이는 ‘천자(天子)’라도 감히 건드릴 수 없다는 권리선언이다.

올 초 『논어 한글역주』를 펴낸 도올 김용옥씨가 동양 고전 한글역주 두 번째 작업으로 『효경 한글역주』(통나무, 480쪽, 2만6000원·사진)를 내놓았다. 고문(古文)으로 된 ‘효경’ 자체는 서문과 22개 장으로 이뤄진 1780자의 텍스트다. 증자(曾子)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으로 이뤄진 글이다. 도올은 이 텍스트 원문과 번역·주해만으로 책을 꾸민 게 아니라, 그 특유의 ‘문명사론’으로 책의 절반을 채웠다. 주자학이 훼손한 ‘효’의 본원적 의미를 묻고, ‘효 사상’의 문명사적 전개를 다뤘다.

“주자의 체계에서는 철저한 충(忠)과 효의 일원화가 성립한다. 주자가 ‘효경’을 너무 협애하게 만들었다”는 게 도올의 견해다. 주자학은 충효의 일체화를 통해 ‘효’로써 백성을 지배하려 했다. 하지만 『효경』의 원래 의도는 천자가 가진 권력을 도덕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도올은 “『예기』에서 공자는 ‘나무 한 그루 베는 것, 짐승 한 마리 죽이는 것도, 자연의 때를 따라 공경히 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효’라고 말한다”고 지적한다. ‘불감훼상’의 효 사상이 인간을 넘어 우주적 생명론으로 확장하는 대목이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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