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학위 받는 아들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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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아들아, 인생은 끊임없는 각고정진의 길이다. 언덕이 있고, 내가 흐르는가 하면, 진흙 밭도 있다.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 곳으로 항해하는 배가 바람과 파도를 만나지 않고 평탄하게만 갈 수는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차라리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고 생각하여라. 잔잔한 항해, 그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네 가슴은 희망에 뛸 것이다. 별들은 가장 캄캄한 밤에 가장 밝게 빛난다. 포도는 포도즙 틀에서 으깨어질 때 가장 진한 향기를 발하고, 어린 나무들은 바람이 가장 세차게 불 때 더욱 뿌리를 깊게 내린다. 금과 은 또한 굳세게 문지를 때 더욱 윤이 난다. 역설적이게도 세상 모든 것들은 가장 심한 시험을 받을 때 가장 큰 승리를 거두고, 가장 큰 고난이 닥쳤을 때 가장 큰 영광을 얻게 된단다.

아들아,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항구를 향해 저마다 자기 배를 출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배에 사랑도 싣고, 희망도 포부도 싣고, 또 양심과 정의, 의리와 우정도 싣는다. 그러나 그 배에 너무나 많이 실었다고 느껴질 때 잘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 쉽게 나아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하나 둘 버리기 시작한다. 양심을 버리고, 희망을 포기하고, 사랑도 정의도 버리며 짐을 줄여 나간다. 홀가분해진 배는 그런 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 항구에 도착하면, 결국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이 배는 텅 비고 만다. 이때에야 후회하고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래서 인간은 저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용기와 희망의 자유를 지니려 진력한다. 진실하고 굳건한 정신의 자유를 갖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참다운 뜻을 전하거나 받을 수 없다. 인간은 삶이 영위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정의와 우애가 뿌리내리도록 힘써야 한다. 삶은 하나의 축복이며, 이를 깨닫는 이에게 세상은 빛이 넘치는 곳이리라.

아들아, 아비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탄식하면서 자식에게는 그 부족함을 채우라고 욕심을 갖는단다.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약력=성균관대 국문과·동대학원 졸업, 소설 ‘청계천’으로 등단, 장편소설 ‘얼어붙은 장진호’ ‘애국작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