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비리 실태]금품청탁 90%가 부유·지도층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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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돈없고 힘없는 집 아들만 현역병으로 만기제대한다' 는 병무 비리 소문이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었음이 검찰 수사에서 입증됐다.

아들의 병무 청탁을 위해 돈을 뿌린 부모들은 비록 사회 저명인사들은 많지 않았지만 사회지도층.부유층 인사들이었다.

이번 병무 비리의 주범 원용수 (元龍洙.구속중) 준위의 수첩에 적혀있는 명단은 모두 4백38명. 이는 96년 12월부터 올 2월까지 1년3개월동안 부탁한 사람들이다.

또 달아난 국방부 합동조사단 박노항 (朴魯恒) 원사도 청탁 리스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元준위가 10여년간 모병연락관을 지낸 사실과 朴원사의 리스트를 감안하면 실제 병무 부정은 이번에 밝혀진 것보다 훨씬 광범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수사 결과 元준위의 리스트 가운데 금품을 준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1백36명. 이중 전문직업인 등이 전체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금품을 건넨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사법처리에서 제외된 '단순청탁자' 에는 4선 경력의 전직의원.판사.모 지방언론사 간부 등도 포함돼 있다.

수사 결과 병역면제 '공정가격' 은 대략 2천만~4천여만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척추디스크.정신이상 등의 병명을 기재한 허위진단서를 제출하고 元준위를 통해 군의관에게까지 차례로 돈을 전달, 일단 재검 (7급) 판정을 받은 뒤 최종적으로 면제판정을 받아냈다.

특히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기소된 K의대 李모교수는 이미 현역판정을 받은 아들의 고혈압 진단서를 발부받고 元준위에게 청탁, 세차례나 재신검을 받았으나 이번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결국 현역판정을 받고 말았다.

또 C물산 대표 金모씨의 경우 로비 덕분에 큰 아들은 면제, 작은 아들은 공익근무요원으로 판정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공익근무요원 판정에는 1천만~2천만원, 카투사 배치에는 5백만~1천만원대의 뇌물이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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