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단 파국은 피했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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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와 노동계대표가 파업 일보직전에 대화를 통해 파국을 피한 것은 일단 다행이다.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되는 상황에서 파업이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협상 양측이 이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엔 재계가 파업관계자 사법처리 최소화 합의에 반발하고 나서 사태가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최근 정리해고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상당수 국민들이 혼란을 겪었다.

그동안 정리해고를 원해 왔던 기업계내의 의견이 갈려 있기 때문에 생긴 혼란이다.

이 문제에 관한 우리의 견해는 제도로써 정리해고의 가능성을 번복하는 것은 이 시점에서 협상대상이 될 수 없으나 정리해고를 하고 안하고는 해당사업장의 노사 양측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것이다.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어렵게 정리해고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은, 정리해고가 봉쇄돼 살릴 수 있는 기업을 못 살린다면 노사 모두 손해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구조조정이 안될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사회적 합의가 모든 기업에 의무적으로 정리해고를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어느 기업이 고용조정 대신 임금을 노사합의에 의해 줄이거나 같은 임금으로 더 많은 시간 일하기로 합의해 기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최근 기업계 일각에서 정리해고를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결국 이같은 개별기업의 노사합의를 전제로 할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같은 주장이 자기 기업과는 별로 안 맞고 고용조정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판단되면 소정의 법적 절차를 밟으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제도로 정착된 정리해고를 안된다고 버티고 제도를 바꾸자는 것도 무리며 자기네 외의 다른 기업에 정리해고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정부의 공식발표로도 이미 실업자가 1백50만명이 넘었다.

이제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고용조정을 하게 되면 연말에는 2백만명선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할 사항은 실업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늦추거나 공기업 개혁을 저지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 점은 노조가 아무리 파업으로 힘을 과시하려 해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실업을 줄이고 고용을 늘리는 길은 일자리 만들기밖에 없다.

그러자면 노조도 진지하게 임금삭감을 감수하거나 근로시간을 늘려 일단 기업을 살리는 등의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기업도 지금은 솔직히 회사의 어려움을 모두 공개하고 협조를 구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정부도 구조조정은 물러설 수 없다는 배수진을 치되 회생가능한 기업에 대한 배려와 실업자에 대한 효과적 전직훈련을 확대해 시혜성 지출보다는 자활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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