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현실 이럴수가…EBS'감성세대'외국PD들 품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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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여고괴담' 은 정말 무서운 영화다.

학생이 귀신이 되어 선생님을 막 흉기로 찔러 죽이는 끔찍한 내용이다.

비단 살인장면만이 공포의 전부가 아니다.

여학생 손등에 피가 흐르도록 매질을 하고, 허연 가루가 묻은 분필 지우개를 사춘기 여자 아이의 얼굴에 내던지는가 하면, 반에서 2등하는 학생에게도 성적이 나쁘다고 욕을 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와 놀지 못하도록 겁주는 선생님, 엄마가 무당이라는 이유로 친구를 깜깜한 창고에 가두는 급우들, 모두 유령 못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를 관람한 학생들 입에서 나오는 "어쩌면 저렇게 우리 학교랑 똑같냐" 는 말이 한층 더 섬뜩하다. 우리 아이들이 귀신 영화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얼마전 개봉된 영화 '세븐틴' 에도 기성세대의 학창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장면이 나온다.

욕이 입에 척척 붙은 선생님. "내가 특수부대 출신이야" 라고 자랑을 하며 남학생들에게 심한 체벌을 가한다.

아마도 남자라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중 한 번 쯤은 겪었을 기억이다.

이런 영화들에 비하면 EBS가 96년9월부터 지난 2월까지 방영한 청소년드라마 '감성세대' 는 우리의 학교를 아주 아름답게 그렸다.

선생님들이 가끔 쥐어박기는 하지만 그래도 학생 모두를 사랑하는 듯 비쳐지고, 학생들이 힘 없는 아이를 골리는 장면이 나와도 담뱃불로 지지거나 몰매를 퍼붓진 않는다.

우리 중학교의 현실을 잔잔히 그린 이 드라마가 지난달 바다를 건너갔다.

독일에서 열린 '국제 어린이.청소년 방송 페스티벌' 에 출품된 것이다.

이 작품은 세계의 쟁쟁한 프로그램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본선에 진출했으나 결국 입상은 하지 못했다. "내용이 너무 비현실적 아니냐" 는 서양 방송인들의 지적이 아마도 부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한 핀란드 PD의 발언 - "하루 종일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성적이 나쁘다고 구박을 받는 게 이상하다. 또한 왜 이렇게 폭력적이고 억압적인가.

학생에 대한 차별도 믿기지 않는다. 혹시 일본의 전자오락 게임을 참고로 해서 만든 것 아니냐. " 행사에 참석했던 EBS 국제협력담당 신경자 (29) 씨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에서 온 PD는 한층 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집과, 학교에서 이렇게 늘 스트레스를 받고 과외 공부에 시달리며, 또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받는데 자살을 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죽음을 택해야 리얼리티가 사는 것 같은데…. " '감성세대' 의 주인공들은 그다지 고통받는 축은 아니다.

그냥 공부 썩 잘하지 못하고, 선생님에게도 적당한 정도 야단을 맞거나 기합을 받으며, 집에서도 평균치로 시달리는 학생들이다.

이런 아이들 모습이 그들에겐 믿기지 않는 것이다.

매체가 보여주는 우리 교정 풍경이 나라 안팎을 놀라게 하고 있는 셈이다.

'여고괴담' 선풍은 학교를 무대로 한 이야기가 속출할 것임을 예감케 한다.

얼마나 더 놀랍고 무서운 작품이 나오게 될까.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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