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유언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3면

한 시대를 풍미한 권력자 마오쩌둥(毛澤東)의 말년은 음울했다. 파킨슨병이 그의 몸을 옥죄었고 배우 출신인 마지막 부인 장칭(江靑)과의 불화가 그의 마음을 피폐케 했다. 별거 중이던 장칭이 만남을 청하자 “이미 여든 살인 나를 당신은 이것저것 요구하며 괴롭히지. 자비를 좀 가져 보시오”라며 거절의 답을 보냈을 정도다.

그런 장칭이 1976년 9월 9일 마오쩌둥이 병상에서 눈을 감자마자 사람들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당신은 부당한 대접을 받아 왔어. 나는 혁명의 정상에 도달하려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오. 그러나 당신은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거요.” 남편이 써 준 유언이란 주장이었다. 권력 투쟁의 회오리 속에 한 달 후 정치국 회의가 열리자 그녀는 문제의 종이를 흔들며 나타나 당 주석 자리를 넘기라고 호통쳤다. 하지만 조작 냄새가 짙은 ‘유언장’은 힘을 못 썼고 장칭과 측근 등 이른바 4인방은 옥에 갇히는 신세가 돼 버렸다.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주석 직을 차지한 건 마오쩌둥으로부터 “그대에게 맡기면 나는 안심이오”라고 적힌 쪽지를 건네받은 화궈펑(華國鋒)이었다(폴 존슨, 『모던타임스』).

죽음은 종종 분란을 낳는다. 가진 게 많은 자의 죽음일수록 더 그렇다. 죽는 자가 유언장을 남겨 산 자들의 갈등을 줄여 보려 하나 허사가 되기 일쑤다. 어떻게 나눠 주든 제 몫에 불만을 품는 이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유언장을 쓸 당시 고인의 정신 상태가 의문시되고, 유언장의 진위 시비가 끊이질 않는 건 그래서다.

마오쩌둥 못지않게 여러 번 결혼해 복잡한 가족 관계를 지녔던 ‘팝의 전설’ 프랭크 시내트라는 궁여지책 끝에 특별한 단서를 단 유언장을 남겼다. ‘누구라도 내 유언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자동으로 상속권을 박탈당할 것’이란 조항이다. 그럼에도 임종까지 해로한 넷째 부인 바버라에게 2억 달러의 유산 중 가장 큰 몫을 물려준 걸 둘러싼 전처들 간 아귀다툼을 막진 못했다.

최근 공개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유언장을 놓고 논란이 무성하다. 세 아이의 법적 후견인과 재산 신탁 수익자로 지목된 어머니 캐서린에 맞서 아이들 생모 등 다른 가족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추모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시작된 추잡한 유산 싸움을 만약 죽은 잭슨이 본다면 ‘스릴러’ 뮤직비디오 속 좀비들처럼 관에서 벌떡 일어날 것 같다.

신예리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