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이렇습니다] 회비 싼 국내 전용카드 드문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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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30대 회사원 최모씨는 지난 3월 초 하나은행에서 영어학원 수강료 할인 혜택이 있는 ‘둘이하나카드’를 신청했다. 자녀의 학원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였다. 이미 4장의 해외 겸용 신용카드를 갖고 있는 최씨는 연회비가 저렴한 국내 전용을 원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섯 번째 겸용카드를 발급받았다.

국내 전용카드가 없는 경우는 다른 은행과 카드사도 마찬가지다. 국민은행의 스위트하트카드, 잇 스터디카드, 우리은행의 미인카드, 신한카드의 S오일보너스카드도 반드시 해외 겸용으로만 발급을 해주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2005년부터 새로운 신용카드를 낼 때는 국내 전용을 함께 내놓아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발급된 9177만 장의 신용카드 중 78.4%인 7195만 장이 해외 겸용 카드였다.

이는 국내 전용 카드가 수익성이나 고객 확보 차원에서 은행과 카드사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과 카드사는 자사의 상품을 고객들이 가장 많이 쓰는 주력 카드로 만들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카드를 해외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자칫 큰 약점이 될 수 있어 은행·카드사는 해외 겸용 카드를 적극적으로 발급하고 있다. 고객들도 언젠가 외국에 나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해외 겸용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또 국내 전용은 해외 겸용보다 연회비가 저렴하다. 이에 따라 다양한 제휴 서비스를 넣기 어렵다는 게 은행과 카드사의 주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카드에 다양한 할인 혜택을 넣으려면 제휴 비용이 들어가는데 국내 전용카드의 연회비로는 이런 비용을 맞추지 못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수요가 적은 탓에 국내 전용카드를 만드는 비용이 겸용 카드보다 되레 비싸게 먹힌다. 대량 주문을 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는데 국내 전용은 가입자가 적어 제작 단가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과도한 겸용 카드 발급→국내 전용카드 수요 감소→전용카드 발급 비용 증가→국내 전용카드 발급 기피라는 악순환이 나타난 것이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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