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거래로는 감동을 못 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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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이번 조문정국과 지난해 쇠고기정국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닮은꼴이다. 폭력시위로 온 나라가 떠나갈 듯 시끄러울 때 이 정부는 그대로 방치한다. 한두 달간 나라가 혼란에 빠져들다가 제풀에 지칠 듯하면 그때 대통령이 포퓰리즘적 정책을 들고 나와 민심을 수습한다고 동분서주한다. 지난해에는 저소득층을 위해 휴대전화료를 깎아주고, 노조에 잘 보이려 공기업 민영화를 사실상 포기했다. 이번 역시 떡볶이집을 시작으로 서민대책을 들고 나오고 있다. 서민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필요하다면 중도정책이든 좌파정책이든 시행해야 한다. 문제는 정국의 고비고비마다 결정을 내리지 않고 나중에 가서 인기정책으로 덮어 가니까 좌든 우든 대통령을 믿지 않는 것이다. 쇠고기 파동 후에도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4대 강 사업을 한다고 살금살금 드러내더니 이번에 “대운하는 내 임기 중에 하지 않겠다”고 했다. 왜 이런 식이 될까. 이명박 대통령의 전임 비서실장이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분은 평생 협상하며 거래하며 살아왔다. 사업이란 100을 원하다가도 상대가 60을 원하면 80으로 협상을 하는 것이다. 비즈니스맨은 공존상생하는 데 능숙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 그렇구나. 여기에 원인이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사람은 그 중간에서 절충이 가능하다. 내가 손해를 안 보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으면 된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사람은 다르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영역은 이익과 손해, 옳고 그름의 영역이 겹쳐 있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한다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혜택을 더 주는 문제는 이익과 손해가 갈리는 문제다. 이런 정책의 영역에서는 절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실용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영역도 있다. 나라의 질서를 세우는 일은 이익의 영역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영역이다. 국가를 지키는 일도,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지키는 것 역시 절대적인 영역이다. 이익을 따지는 데 익숙했던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일이 생길 때 당황한다. 여기서도 절충선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정을 못 내리고 우유부단하게 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지키는 것은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보다 훨씬 부담스럽다.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면 정치인으로서 잠시, 아니 어쩌면 영원히 실패할 수 있다는 중압감이 따르게 마련이다. 닉슨의 뒤를 이어 잔여 임기를 수행하게 된 포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리더십의 궁극적 시험은 여론조사를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어떤 위험을 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치적 용기란 스스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실패는 그런 용기 없이 지내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당시 여론은 닉슨에 대한 사면을 반대했지만 국가를 위해 이 길이 옳다는 점을 그가 미리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그는 재선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후일에는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추앙을 받고 있다.

누구나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다.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광화문에 10만 명이 모여 있다면 그것이 왜 두렵지 않겠는가. ‘나는 두려운 것이 없다’고 뽐낸다면 그는 무모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겨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의 직무에 진정으로 충실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소방관이 날름거리는 불꽃만을 본다면 두려움 때문에 그 안으로 뛰어들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저 불꽃 안에 있는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나의 직무’라고 믿을 때 그는 두려움을 잊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용기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다.

대통령의 직무는 무엇인가. 헌법을 지키고 국권을 수호하는 것이다. 법치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손익을 따져 중도를 택한다면 대통령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런 대통령이라면 그의 임기는 혼란과 인기주의 사이를 왕복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감동을 주는 대통령을 원하고 있다. 원칙과 정의에 물러서지 않는 용기 있는 정치인을 원하고 있다. 그런 감동과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가? 손익에 매달리지 않고 옳은 일에, 맡겨진 직무에 자기를 희생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그런 희생을 보여줄 때 국민은 지도자를 믿는 것이다.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