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홍구 칼럼

동북아 중심국가로 가는 첫발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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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리는 동북아의 중심국가가 돼 보겠다는 꿈을 여러 해 꿔왔고 이제는 그것이 국가적 목표로 공식화됐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온갖 풍상을 겪어 왔으며 아직도 분단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나라가 과연 중심국가로 비약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이 희망과 우려가 겹친 불안감을 안고 있다. 그러기에 동북아중심국가론은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고 오늘의 국제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안전과 번영을 최대한 담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임을, 특히 공격적 측면과 방어적 측면을 동시에 갖춘 전략임을 국민에게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경제 제일주의 정책에 매진을

오늘의 동북아 정세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의 가능성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공산당이 통치하고 있는 중국이나 베트남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운영되는 한국이나 일본과 큰 갈등 없이 공존하는 정치적 유연성이 일상화된 지역이다. 한반도와 대만해협에 긴장이 지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1975년 베트남전쟁 종료 이후 한 세대에 걸쳐 대규모 군사충돌 없는 지역적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평화와 번영의 분위기가 우리에게 동북아중심국가론을 전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것이다.

강대국 간에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선 상대적 약소국인 우리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와 반대로 지금처럼 평온이 유지되는 경우에는 우리에게 적극적 또는 공격적 전략을 시도할 행운의 공간이 주어진다. 특히 현재 동북아에서 유지되고 있는 평온은 이 지역의 모든 국가가 시장경제의 보편화를 통한 경제성장에 국가적 최우선 순위를 부여한다는 공통분모를 공유하는 데서 비롯됐음을 유의해야 한다. 눈 딱 감고 고도 성장에 매진하는 중국의 자세가 지역 평화의 가장 큰 요인임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렇듯 경제발전이 동북아지역 평화의 기본 원칙이며 원동력이라면 한국은 공세적 전략을 펼쳐 볼 경험과 실적도 있고 자신과 당위성도 있다. 한 세대만에 국민소득 100달러에서 1만달러로 도약한 한강의 기적, 그 주인공이 바로 우리가 아닌가. 각 나라의 인구.군사력 크기를 견주는 시합이 아닌 창의력과 경제력의 경쟁으로 동북아공동체가 태동하고 있다면 우리가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공격적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동북아중심국가라는 목표의 설정이 아니라 실천방안과 이를 밑받침하는 정치적 선택에 있다. 한마디로 경제 제일주의, 특히 창의력과 경쟁력에 초점을 맞춘 경제 우선 정책에 전력투구하지 않고서 동북아중심을 꿈꾼다면 허무한 망상이 돼버릴 것이다. 중국의 약진, 일본의 저력을 앞질러 가겠다는 과감성과 집중력을 보일 때에만 우리의 공격적 전략이 정당화될 수 있다.

한편 동북아중심론의 방어적 측면은 어떤 것인가. 오늘날 동북아에는 다행히도 평화가 유지되고 있지만 그것이 지정학적 여건을 원천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아니다. 인구뿐 아니라 경제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세계 제일을 꿈꾸는 중국, 유럽에서 아시아에 걸쳐 방대한 국토와 자원을 보유한 러시아, 아직도 엄연히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며 그 위치를 반드시 지켜 가겠다는 일본 등 강대국이 인접한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여건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는 언제나 위험한 세력의 각축지대로 변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가장 먼저 희생의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의 위치다.

***동맹 유지하며 자주적 힘도 길러야

따라서 열강 사이의 안정적 세력 균형을 담보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자원하고 나서는 것이 방어적 차원에서 제기하는 동북아중심론이며 이는 우리의 생존을 위한 보험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러시아.일본 사이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우리가 과연 지역적 세력 균형 체제를 구축하는 중심국가가 될 수 있을까. 이미 지적한 대로 우리는 계속 자주적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동북아 세력 균형을 향해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지역 외부의 큰 세력, 즉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확실히 견지하는 것이다.

결국 동북아중심국가라는 목표로 전진하는 첫걸음은 경제발전과 동맹유지를 최우선 정책목표로 재확인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다지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이홍구 중앙일보 고문.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