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아시아는 책임질 준비가 되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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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아시아가 세계 다른 지역보다 경제위기에서 빨리 벗어남에 따라 세계 무게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는 아직 세계적 문제를 감당할 리더십을 맡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아시아 부상의 신호는 뚜렷하다. 지난 5년 동안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서 1/3로 커졌고, 인도의 비중도 대략 6%에서 16%로 늘어났다. 세계 주요 협정에서 중국과 일본·인도를 빼놓을 수는 없게 되었다. 특히 중국은 6자회담과 선진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거의 모든 세계 포럼에서 미국의 핵심 상대국으로 등장했다. 심지어 미국과 중국을 선진 2개국(G2)이라고 부른다.

아시아의 새로운 영향력은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아시아의 내수 소비가 늘면 세계 경제는 채무에 허덕이는 미국에의 의존도를 낮추며 성장할 수 있다. 만약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 배출 의무 상한선을 점진적으로 이행하면 12월 코펜하겐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세계적 합의는 가능할 것이다. 세계의 패권자로서 미국이 걸어온 길에 비판적인 이들은 단극 체제를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베트남·이라크 개입과 교토의정서 반대, 최근의 금융위기 등 미국의 명성에 먹칠을 한 많은 사례를 언급한다. 그럼에도 지난 60여 년간 세계 지도자로서 미국의 유산은 전례가 없었다. 미국은 유엔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의 창설과 국제 인권법 제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시장을 개방했고, 세계화와 정보혁명을 위한 초석을 놓는 등 미국이 해낸 일은 끝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금융위기로 약해졌고 채무도 늘었으며, 이라크에서 발목이 잡히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많은 도전에 직면하자 더 이상 예전의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됐다.

아시아 패권국이 지친 미국의 리더십을 공유하는 다극 체제에 대한 전망이 커지고 있지만 아직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시아 국가들이 그런 역할을 하려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아시아 국가들은 위험한 국가주의를 해결해야 한다. 1945년 이후 역사적 망령을 거의 묻어버린 유럽과 달리 아시아 국가들은 19세기 스타일의 국가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다. 국가주의는 다른 국가와의 협력을 약화시키고 실제보다 더 지역을 위험하게 한다. 게다가 아시아 국가들은 자국에서 인권 문제(특히 버마와 북한)와 국제 기후변화 협상 등을 다루는 데는 더 독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유엔 식량원조의 절반을 제공하고 있으며 유엔 전체 지출의 20%를 부담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의 분담금은 미미한 수준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지역과 세계적 현안에 대한 긴밀한 공조를 보장하기 위해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지역포럼 같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구를 강화해야 한다. 유럽·대서양 기구만큼 강력한 지역 기구는 어디에도 없지만 만약 21세기가 아시아·태평양의 시대가 되려면 아시아의 지역 기구도 그렇게 돼야 한다. 모든 국가가 국제적인 경제 패권의 이동과 맞물린 국제협력 모델을 혁신하는 데 협력해야 한다. 아시아의 새로운 패권 국가를 비롯한 모든 국가가 세계적 위기에 대처할 때 더 중요한 책임의식을 갖길 기대한다.

제이미 메츨 아시아 소사이어티 수석부회장
정리=하현옥 기자 ⓒ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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