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와 짝 이룬 누치 카리스마로 무대 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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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고이 숨겨 둔 딸 질다(소프라노 조수미)가 납치된 후 만토바 공작에게 겁탈 당하자 아버지 리골레토(바리톤 레오 누치)는 복수를 결심한다.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국내 오페라팬들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2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리골레토'에서 질다 역을 맡아 국내 첫 오페라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것이다. 특히 '리골레토'는 1986년 유럽 무대에 그녀의 존재를 알린 출세작이어서 더욱 뜻깊은 무대였다.

국내 오페라 출연 제의를 고사하던 그가 이 작품을 택한 것은 데뷔작이어서만은 아니다. 볼로냐 오페라단의 프로덕션인 데다 세계적인 바리톤 레오 누치(62)가 리골레토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수미가 좀더 일찍, 최소한 5년 전쯤에라도 국내에서 질다 역을 맡았더라면 하는 느낌을 감추기 힘들었다. 특유의 '천상의 목소리'가 들릴 듯하다가도 끝내 아쉬움을 남기고 사라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운 이름'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기민하게 넓은 음역을 오르내리던 콜로라투라의 기교도, 보석처럼 빛나던 고음(高音)도 세월의 영향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노련한 호흡과 가성(假聲)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도 했다. 문제는 조수미가 최근에 즐겨 출연하는 오페라가 국내에선 자주 상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 선택에 무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것은 뚜렷한 음색과 명확한 발음, 가슴을 저미게 하는 호소력 짙은 노래를 들려준 누치였다. 눈빛과 표정, 제스처에서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절로 배어나왔다. 리골레토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만토바 공작 역의 테너 아킬레스 마르카도(33)는 풋풋한 싱그러움을 느끼게 하는 젊은 목소리의 소유자로 오랜만에 귀를 후련하게 해주었다. 24일 리골레토 역으로 출연한 바리톤 고성현도 더욱 깊어진 음악성과 연기로 나무랄 데 없는 무대를 선사했다. 남은 공연(27~28일) 중 조수미와 누치.마르카도는 피날레 무대에 출연한다. 02-399-1111.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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