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조 교수의 교과서 밖 조선 유학] 쾌락주의ㆍ자연주의ㆍ초월주의 너머에 인간의 ‘결’이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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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08면

이(理)를 둘러싼 세 웅덩이:근대, 자유, 종교
주자학은 이(理)의 철학이다. 자연(氣)에 새겨진 ‘무늬’와 ‘눈금’을 적극 의식하자는 뜻이 거기에 담겨 있다. 이(理)라는 글자가 어원학적으로 ‘옥이나 대리석의 결’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좋겠다.

퇴계, 그 은둔의 유학 <4>

이(理)라니, 대체 인간의 무늬 혹은 결은 어디 있는가. 이 대답에 따라 길이 달라질 것이다. 주자학은 세 가지 ‘함정(?)’을 물리치고 자신의 목소리를 발해야 했다. 어설프게 정리하자면 그 셋이란 1)존재하는 것은 다만 신체의 욕구뿐이라는 쾌락주의 2)신체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이성을 발휘할 것이라는 자연주의 3)이성은 신체 밖의 타자적 지평에 있다는 초월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1 근대와 불화한 전통
첫째 태도는 이를테면 근대 이후 우리가 기대고 있는 원리와 닿아 있다. 모든 욕망이 개인과 자유의 이름으로 용인되고 사회적 제도와 장치는 그 성취의 최대화 과정에서 생길 충돌과 갈등을 조정·완화하는 것. 프롬의 진단에 의하면 이 원리는 근대라는 특수한 정황 이전에는, 로마 귀족의 현실적 태도를 빼면 동서양에 유례가 없는 ‘돌출적’ 파천황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원리는 동일하다고도 했다.

유교는 노장과 불교와 더불어 이 원리에 깊은 우려와 혐오감을 갖고 있다. 유교가 19세기 서세동점의 시대에 근대 문명과 불화한 것은 그러므로 당연하다. 이기의 어법을 빌리자면 근대의 노선은 “오직 기(氣)만을 말할 뿐 이(理)를 돌아보지 않는다.” 이는 금수(禽獸)의 태도이지 인간의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선의 끝자락에서 혜강 최한기가 이 원리를 혁신적으로 제창한 바 있다. 그의 학문을 기학(氣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생리적 욕구에 충실하고, 선험적 도덕성 없이 오직 백지의 정신으로 세상을 인지하고 헤쳐 나가는 차가운 현실주의의 철학을 구축해 나갔다.

2 훈련 안 된 자유를 우려한다
둘째 태도는 노장의 도가(道家)가 일찍이 주창한 바 있다. 그들은 “무엇을 하겠다고 나서지 말라”고 팔을 붙잡는다. 그들은 길이 역설적으로 자의식과 이념의 과잉을 제어하는 데 있다고 가르쳤다. 노자는 말한다. “그 배를 채우고 마음을 비워라.” 특히나 유교가 강조하는 인의(仁義)의 덕목들은 지배와 권력의지의 산물로 가식과 파당을 강화할 뿐이라서, 거기 인간세의 평화와 안전은 기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직 심신의 자연성에 귀 기울이고 목표와 가치를 내세우지 않는 혼륜과 무의미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 예술가적 혹은 심층생태학적 캐치프레이즈는 조선 유학에서 화담 서경덕이 대표하고 있다. 그는 기(氣)의 관찰과 명상을 통해 자연적·자발적 성취로 나아갔다. 그는 노장과 더불어 이(理)와 기(氣)를 갈라 놓지 않는다. “이는 기 속에 숨쉬고 있다”는 것, 그래서 “기의 자연발현(自然發現)이 바로 이(理)”라고 당당히 말한다. 이와 기의 동체를 말하는 점에서 이기일원론, 또는 기 속에 이가 간격 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예 ‘기일원론’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들 이름을 중·고교 교과서에서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화담은 이 태도로 하여 조선 유학에서 ‘이단’의 이름을 얻었다. 화담의 제자들이 그를 명예의 전당인 ‘문묘’에 올려야 한다고 주청하자 선조는 “기수(氣數)는 있으되 도덕이 없으니, 그를 어찌 유학자라고 하겠느냐”고 난색을 표했다. 퇴계는 화담의 자연주의에 기겁을 했다. 그래서 이와 기의 대립과 불일치를 강조했고, 이윽고 극단인 이발(理發)까지 주창해 율곡의 비판을 불렀다.

3 유교는 종교가 아니다
퇴계는 ‘합일(合一)의 일원론적 사유’를 위태롭게 생각했다. 주어진 그대로를 조건이나 과정 없이 궁극적 가치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그로 하여금 이와 기의 엄격한 구분을 강조하는 이원론자가 되게 했다. “이기부잡(理氣不雜), 즉 이와 기는 현실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 둘을 완전히 분리시켜야 할까. 이곳이 까다롭다. 놀랍게도 주자학은 이 둘을 홧김에 갈라서도 안 된다고 손을 내젓는다. 왜냐. ‘이원론’은 인간의 길을 자칫 자연 밖에 설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눈여겨봐야 한다.

만일 신체에 이성의 내재된 가능성이 없다면, 즉 “신체의 자연 안에 미리 새겨진 무늬나 결이 없다면”, 기독교나 이슬람처럼 인간의 길은 신의 계시나 인도에 혹은 그 말씀이 적힌 책의 명령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라면 사회적 규율과 법전의 강제를 묵묵히 따르는 자동인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자학은 이 사태를 무엇보다 경계한다. 이기의 부잡(不雜)을 말하던 주자학이 다시금 뜬금없이 “이기불리(理氣不離)를, 즉 이와 기는 분리될 수 없다”고 역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명목상으로 두 명제는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이 곤혹이 주자학의 이해를 가로막아 온 것도 사실이니, 섬세하게 살펴야 활간(活看)의 길이 열린다.

이기불리의 명제를 통해 주자학은 도(道)의 실현에 있어 신체와 세속의 지평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런 점에서 종교가 아니다. 요컨대 저 너머의 계시는 없다. 인간의 길은 인간의 심신에 각인된 ‘자연’ 속에서 발견하고 성취해 내야 하는 어떤 것이다. 퇴계는 자신의 최후의 작품 『성학십도』의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도무형상(道無形象) 천무언어(天無言語).” 즉 길은 가려져 있고, 하늘로부터의 인도는 없다. 그렇다면? 길은 내 속에 있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는 어떤 것이다. 인간의 책무는 그 내재적 무늬와 결을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발견하는 데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전한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주희에서 정약용으로』『조선유학의 거장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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