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보고누락' 국방부 오락가락 대응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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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월선에 대한 '보고 누락' 사건의 진상은 과연 무엇일까?

정부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로 일단락돼 가던 북 경비정의 'NLL 월선 및 보고누락' 사건이 단순한 판단착오가 아닌 '고의적 묵살'에 의한 것이라는 조영길 국방부장관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있다. 국방부는 뒤늦게 김성만(중장.해사 25기) 해군작전사령관이 사격금지 명령 등을 우려해 북 경비정의 교신 유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긴 것에 대해 "해작사령관의 개인적 변명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히는 등 대응이 오락가락해 국민들만 헷갈리고 있다.

◇뒤늦은 해명 =남대연 국방부 공보관은 25일 브리핑에서 "해작사령관의 언급은 사리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건 종료 이후에 자신의 (보고누락)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개인적 변명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남 공보관은 이 같은 판단에는 "해작사령관이 합동참모본부에 (북 경비정 교신사실) 보고시 사격중지명령이 내려오면 거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으나 경고사격은 작전예규상 함대사령관급에서 결정할 사안이라는 점이 고려됐다"고 강조했다.

해작사령관은 지난달 남북장성급군사회담 합의후 서해상 우발충돌에 신중히 대처하기 위해 2함대사령관의 권한사항인 경고사격시 이를 사전에 자신에게 보고토록 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남 공보관은 또 '사후 송신 사실보고시 언론 등에서 사격의 부당성을 제기할 것을 우려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송신 사실이 있었는데도 경고사격을 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한 점과 급박한 작전상황에서 (해작사령관이) 고려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작전사령관으로서 (그 설명이) 이치에 맞지 않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남 대변인은 또 23일 언론 브리핑 당시 "시간관계로 충분히 설명을 드리지 못했다"며 "국회에도 보고를 한 내용으로 고의로 누락시킬 의도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박정조 정부 합조단장(육군 소장.국방부 동원국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북 경비정의 기만통신 내용이 가장 중요했다"며 "해작사령관의 말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 언론 브리핑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해작사령관은 정부 합조단의 조사당시 "적의 교신이 기만통신으로 판단, 보고할 가치가 없었다"고 한결같이 주장하다 (사건 발생 일주일후) 노무현 대통령의 추가조사 이후 '사격 중지명령'과 '사격의 부당성 제기' 등을 우려했다는 이유를 제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방부의 오락가락 대응=이번 사건의 발단은 14일 오후 4시 47분께 북 경비정 '등산곶 684호'가 서해 연평도 NLL을 월선한 것에서 부터 비롯됐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후 "북 경비정이 모두 4차례에 걸친 경고방송에도 불구하고 NLL을 계속 월선, 2발의 경고사격을 가해 퇴각시켰다"고 발표했다.

합참의 발표에는 사태를 파악하는데서 중요한 변수이자 알맹이인 북 경비정의 3차례에 걸친 송신과 이와 관련한 군 지휘계통의 보고누락 사실이 빠졌다.

그러나 북 경비정의 교신사실은 정보기관에 의해 체크됐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16일 회의를 열고 '지금 내려가고 있는 선박이 우리(북) 어선이 아니고 중국 어선이다'라는 등 북 경비정의 3차례에 걸친 무선응답 사실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진상조사 지시를 내렸고 이에 따라 정부 합동조사단이 편성됐다.

국방부는 언론 브리핑에서 북 경비정이 '내려가는 선박은 중국어선'이라는 내용을 3차에 걸쳐 송신한 사실을 확인하는 한편, "금번 사태가 발생한데 대해 국민들께 사과드리고 조사가 끝나는 대로 그 결과를 알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국방부는 이날 발표에서 '중국어선'이란 부분만 부각해 발표했지만 정작 북한 경비정이 남북이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합의했던 '한라산'(남측 함정에 대한 호출부호)을 8차례에 걸쳐 호출한 사실은 누락시켰다.

국방부가 사건의 진실을 가리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국방부는 실수라며 얼버무렸다.

합조단의 23일 조사결과 발표와 노 대통령의 '경고적 조치' 지시로 사태가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이번에는 해군작전사령관의 의도적 '보고 묵살'이라는 새로운 복병을 만난 것.

합조단은 해작사령관이 북 교신내용을 기만적 통신이라 판단, 임의로 보고를 누락했으며 여기에 일부 핵심 장교들의 부주의한 근무태도가 보태져 보고누락 사건이 빚어졌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조영길(曺永吉) 국방장관은 24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NLL을 넘은 북한 경비정의 교신 사실을 합참에 보고할 경우 경고사격 중지 명령이 내려질 것을 우려해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해작사는 상부기관이 남북간 서해상 무력충돌 방지를 위해 가동한 핫라인의 의미를 존중해 '경고사격 보다는 경고방송으로 계속 퇴각을 유도하라'는 명령이 떨어질 것을 예단하고 교신 사실 자체를 고의적으로 묵살했다는 것이다.

'보고시 경고사격 중지 명령 우려' 등 해작사령관의 의도적 보고 묵살이 드러나면서 국방부는 매우 곤혹스운 표정이다.

고의든 실수든 이같은 국방부의 '갈지자 행보'가 계속되는 데 대해 일부에서는 국방부가 보고누락 사건에 대한 진상을 명확히 밝히기보다는 특정 부분을 가린 채 입맛에 맞는 사실들만 발표해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청와대 역시 24일 조영길(曺永吉) 국방장관이 국회 국방위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교신유무 보고누락 사건과 관련해 "고의로 누락된 것"이라고 밝힌데 대해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 장관이 국회에서 "부주의가 아니라 고의로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작전 지휘체계 유지에 있어 심각한 군기위반 사안"이라고 강하게 언급한데 대해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가 보고누락은 물론 남북 함정간 교신내용 유출 등 일련의 과정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보고누락 관계자들을 경고조치 하는 선에서 이번 일을 봉합하려던 차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디지털뉴스센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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