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한 도시 되살리기 좌파 우파 따로 없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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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03면

네르비온 강변에 있는 빌바오 시청 건물은 중세시대 궁전을 연상시킬 만큼 아름답다. 이곳에서 빌바오의 도시 개조 스토리를 물었다. 백발에 흰 수염을 기른 시청 직원 마우로 운다(사진)는 32년 동안 도시 설계 분야에서 일했고 현재는 도시계획ㆍ친환경국 부국장을 맡고 있다. 그는 “빌바오의 변신은 주민과 시 당국, 언론이 같은 목표를 향해 힘을 합쳤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마우로 운다 市 부국장

-도시 재생을 시작한 시기와 동기는. “1970년대 이곳 경제 기반이 급속하게 붕괴하면서다. 조선산업에 불황이 닥치고 대홍수까지 겹쳐 민심이 흉흉해졌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상이 됐고, 빌바오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더 이상 공업에 매달려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도시 개조는 누가 주도했나. “개인과 기업, 빌바오시, 바스크 주정부가 참여하는 ‘빌바오 리아 2000’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계획을 짜면 분야별로 토지 매입, 형질 변경, 건축 설계 등을 나눠 역할을 맡았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했나. “빌바오시와 바스크 주정부에서 예산 지원을 했고, 빌바오 리아에 참여한 개인과 기업들이 자신들 소유의 땅이나 건물을 판 뒤 받은 돈을 재투자했다. 이들이 판 땅을 중심으로 재개발사업을 펼쳐 나갔다. 깔끔하게 정비된 지역은 땅값이 올랐다.”

-반대도 만만찮았을 텐데. “이해당사자들을 모아 여러 차례 토론과 회의를 거친 뒤 ‘오케이’ 사인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어서 좌파와 우파 모두 한마음으로 뭉쳤다.”

-언론의 역할은. “신문들은 도시 개조에 대해 정보만 제공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다. 언론이 객관적으로 보도해 준 덕분에 자신 있게 일을 해 나갈 수 있었다. 다만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에 대해서만큼은 찬반이 엇갈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 의견이 줄어들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빌바오에서 갖는 의미는. “빌바오가 되살아나는 데 미술관의 역할이 매우 컸다. 미술관 개관 이후 여행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조만간 구겐하임에 버금가는 대형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하나 더 지을 예정이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이번에는 시 외곽에 지었으면 한다.”

-도시 개조에 모델로 삼은 곳이 있나. “공업도시에서 변신을 시도해 성공한 몇몇 지역에서 정보를 얻었지만 참고만 했다. 오히려 빌바오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고 싶은 곳을 도와준다. 일종의 싱크탱크인 ‘빌바오 30’에서는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 세계 25개 도시에 컨설팅을 해 주고 있다.” 빌바오=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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