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경제전문가들 다 어디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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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똑같은 사안을 놓고 정반대되는 논거를 펴 둘다 노벨상을 받는 사람들이 이코노미스트" 라는 조크가 있다.

이코노미스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요즘처럼 곤혹스러운 때도 없었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언제쯤 나아질 것 같으냐" 고 물어 온다.

"바닥도 치지 않았는데 올라갈 기대부터 한다" 고 핀잔을 앞세우지만 "그 바닥이 언제냐" 는 다그침에는 "글쎄…" 하고 말끝이 흐려진다.

현실진단부터 엇갈리니 예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때도 그랬다.

당시 예일대의 어빙 피셔는 최고의 경제학자이자 주식투자에도 '꾼' 이었다.

"대공황은 오지 않으며 경기후퇴가 온다 해도 잠시뿐" 이라고 자신 있게 예언했다가 학자적 명성과 돈을 함께 날렸다.

IMF사태 이후 우리의 경제전문가들은 주눅이 들대로 들었다.

우리 경제의 전망은 물론이고 현상분석까지 어느새 외국 전문가그룹들에게서 '귀동냥' 을 듣는 처지가 됐다. 외환위기 및 주가폭락 사태를 정확히 맞춘 '불길한 예언가' 스티브 마빈은 이제 "제2의 위기가 오고 있다" 며 기염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MIT) 의 루디거 돈부시는 "구조조정이 더뎌지면 한국경제가 IMF체제를 벗어날 확률은 제로" 라고 단언한다.

"한국 관료집단을 싹 갈아 치우라" 는 모욕적 언사도 서슴지 않는다. "지금부터 연말 사이에 최악의 위기가 닥친다.

지난해 11월의 위기는 앞으로 닥쳐올 위기에 비하면 피크닉에 불과할 것" 이라는 얘기도 외지에 버젓이 보도된다.

바깥에서는 우리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우리만 이를 모르고 있다는 얘기인가. 우리 경제의 운명이 이토록 바깥의 입들에 '도마질' 당하는데도 한국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모두 어디에 갔는가.

한국의 경제전문가들 역시 국제사회에서 꽤 신뢰를 잃었다.

관변연구소들의 현실진단이나 정책보고자료는 정부정책의 이론적 합리화나 들러리 역할이 고작이었다.

민간연구소들의 진단과 처방은 관련기업이나 업계의 이익을 의식한 경우가 적지 않아 중립성과 독립성면에서 한풀 접어 듣는 경향이다.

정책판단자료나 기업 경영내용 등 기본적인 데이터의 신빙성부터 문제가 된다.

당국이나 기업들은 자기들에 불리한 자료를 숨기기 일쑤다.

투자 및 인수.합병 (M&A) 협상과정에서 외국 전문가그룹들에 의해 한국경제의 '구린 곳' 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정말 이렇게까지 엉망인 줄은 몰랐다" 는 반응들이 쏟아진다.

기업내용을 잘 몰랐을 때는 곧잘 주식을 사들였지만 대충 감을 잡고 나서는 앞다퉈 빠져나간다. 자딘 플레밍의 조사담당이사로 자리를 옮긴 스티븐 마빈은 최근 한국기업들의 국내빚이 달러로 4천2백10억달러, 외국빚이 최소한 8백억달러로 작년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 (GDP) 의 1.6배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이들의 추정과 진단은 국제금융계에서 곧 진실로 통한다.

지금의 경제난국은 흔히 6.25에 버금가는 국난에 비유된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전쟁터의 외과의사들이다.

팔다리를 절단해 생명을 건질 것인가,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둘 것인가.

이는 선택이나 트레이드오프 (상반관계) 를 넘어선다.

절단하지 않고 연명만 하려 드는 것은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

미국은 대공황을 겪으면서 경제학계가 인재풍년을 맞았다.

의욕에 찬 준재들이 현실문제 타개를 위해 경제학연구로 대거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IMF사태와 현 아시아 경제위기는 우리의 이코노미스트들에게는 도전인 동시에 일대 기회다.

우리 문제를 언제까지 남의 분석이나 처방에 맡겨 둘 것인가.

환율과 경기부양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만 해도 그렇다.

돈을 풀기에 앞서 돈이 아래로 흐르도록 물꼬를 트는 일이 더 중요하다.

환율의 인위적 절하를 통한 일시적 수출증가보다는 경쟁력과 생산성 및 효율 위주로 수출산업을 재편하는 일이 더 긴요하다.

어차피 건너야 할 '죽음의 계곡' 이 아닌가.

미국의 트루먼대통령은 '한편으로는 (on the one hand) 이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on the other hand) 저렇고' 하는 경제자문관들의 정책건의에 진저리가 나 "팔 하나만 가진 이코노미스트 (one hand economist) 는 없느냐" 고 역정을 냈었다.

대안을 제시하는 용기 있는 이코노미스트들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절실하다.

변상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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