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용한·사진작가 심병우씨'…오지마을'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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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컴퓨터 하나로 천리밖 사람의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첨단시대에 우리는 왜 더욱 외롭고 이유 없이 의기소침한가. 고향을 잃은 때문 아닐까. " 잡지기자 출신인 시인 이용한씨는 몇해 전부터 이런 질문을 계속 던져왔다.

그래서 지난해 4월 '수구초심 (首丘初心)' 의 심정으로 잃어버린 고향을 찾는 '장정' 에 나섰다.

사진작가 심병우씨와 함께 지프를 몰며 강원에서 시작해 남녘 섬진강 일대까지 산과 계곡, 논길을 누볐다.

그러기를 10개월. 모두 70여곳의 오지를 순례했다. 대부분 버스도 들어가지 않는 궁벽 (窮僻) 한 곳들. 사는 사람도 대부분 10가구 미만이었다.

그 가운데 30여곳을 간추려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 를 냈다 (실천문학사刊) .잡지.신문에서 오지가 더러 소개된 적이 있으나 오지마을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은 이번이 처음. 각 글마다 기행수첩도 붙여 테마여행 안내서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여행길은 굽이굽이 애굽은 길의 연속이었다. 강이 있으면 강의 굴곡을, 계곡이 있으면 계곡의 경사를 따라갔고, 커다란 나무가 있으면 비켜갔다. 때론 계단식 다랑이 논이 펼쳐졌다.

구부러지고 휘어지며 이루어내는 논두렁의 굴곡. 저자는 이런 부드러운 굴곡에서 서양의 직선 문화보다 훨씬 정겨운 우리네 곡선 미학을 읽어냈다.

어루만지며 지켜야 할 우리 삶의 원형에 눈을 뜬 것이다.

더욱이 저자에겐 자연보다 사람들이 더욱 살갑게 다가왔다.

촌부 (村夫) 들은 멀리서 온 길손에 산나물과 김치를 곁들인 푸짐한 저녁상을 선뜻 내놓았고, 소주에 토종꿀을 섞은 술에 송이찌개 안주도 대접했다.

자기 방을 내주며 자고 가라는 이도 있었다.

강원도 평창군 봉두고니 마을에선 82세 할아버지의 전설이야기를 듣다가 날이 샐 뻔도 했다.

필자는 오지들의 위태로운 현실도 잊지 않고 전달한다. 청장년들이 빠져나가 노인들의 외로움이 가득한 농촌, 갖가지 공사로 점차 파괴되는 천혜의 산골, 심각한 수질오염으로 자정능력을 상실한 호수 등등.

특히 20~30년 전만 해도 흔히 마주쳤으나 지금은 자취만 겨우 남은 너와집.굴피집.샛집.초가집.흙집 등 주거문화를 중심으로 갈수록 허무하게 '퇴출' 당하는 기층문화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과거가 없으면 미래도 없듯이 그의 여정 (旅程) 을 따라 올 여름을 보내는 것도 훌륭한 자기반성의 기회가 될 것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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