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서 “레디~액션!” 외치는 연극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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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큰 목소리로 ‘레디~액션’이라고 해요.”

“선생님은 선생님인데, 다른 선생님들하고는 달라요.”

서울에 있는 선린인터넷고등학교의 학생들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연극배우 문지영(42·사진)씨. 그는 20년차 연극 배우이자 8년차 교사다. 연극 배우로서 1막이 끝나기도 전에 교육이라는 2막에서 교사라는 자신의 배역을 열정적으로 연기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선린인터넷고 1학년 6반 5교시. 문씨가 진행하는 ‘창의연극’ 시간이다. 나무 마룻바닥에 3면이 전신거울인 연극전용 교실로 25명의 학생이 모였다. 8~9명씩 세 개 조로 나뉘어 문씨 손에 있던 종이를 뽑았다. “아~”하는 탄성이 들렸다. 권율이네 조가 뽑은 과제는 ‘접이식 의자를 보고 세 가지의 사물을 연상하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만드시오’였다. 과제를 받은 학생들은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이렇게 하면 지루해. 이 부분에선 주인공이 울어야 해.”

학생들은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냈고, 함께 토론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15분의 준비시간이 지나고, 모두 입을 모아 “레디 액션”을 외쳤다. 권율이네 조는 노트북과 방문, 파리채를 생각했다. 주인공이 방에서 ‘노트북’으로 야한 동영상을 보고 있다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아버지한테 ‘파리채’로 맞는다는 상황을 연기했다. 연출부터 연기·조명·음향까지 모든 것을 학생들이 맡았다. 같은 조 상현이(16)는 “처음에는 친구들 앞에서 연기하는 게 너무 쑥스러워 도망치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지난해 캔자스 주립대에 진학한 졸업생 이왕(20)씨는 문씨에게 “창의연극 시간을 통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고 나를 표현하는 연습을 할 수 있어 미국에서 수업을 듣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e-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문씨는 한양대 무용과 재학 중 동아리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졸업 뒤에는 서울시립극단을 비롯한 여러 극단에서 연극 ‘브루터스 너마저’ ‘지붕 위의 바이올린’ ‘눈나리는 밤’ 등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그러다 2002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한 예술강사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일선 학교에서 연극 강사로 활동하게 됐다. 선린인터넷고와도 2002년에 인연을 맺었고, 현재 1학년 열두 반을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 50분씩 강의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양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을 만큼 교사로서의 삶을 귀중하게 여긴다. 문씨는 “교실을 또 하나의 무대라고 생각한다”며 “감정을 잃어버린 요즘 학생들에게 연극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글=임현욱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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